- 오늘은 베드로 전서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산 소망에 대하여 말씀을 듣겠습니다. 본서는 기독교 신앙 때문에 박해를 받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쓴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당시 로마시대 10대 박해가 있었습니다. 주로 로마 황제들에 의한 박해입니다. B.C. 64년 경 네로 황제(로마 대 화재의 원인을 기독교인들에게 돌림) B.C. 90년 경 도미티아누스 황제(황제 신격화 반대에 대한 핍박), 트리아누스황제 등입니다. 베드로는 고난당하기 시작하는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성품과 구속역사를 믿고 용기를 잃지 말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신앙의 동요 없이 박해를 이겨나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시련이 있다고 놀라서는 안 됩니다. 성도들은 ‘시련의 불시험을 이상히 여기지 말고’(4:12)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들처럼 즐거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시련과 박해를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특권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함으로써 고통과 고난을 이겨 나갈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외부의 박해에 대비해 성도들에게 참된 소망을 주고 있는 본서는 ‘소망의 서신’ ‘격려의 서신’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이러한 권고는 당시 성도들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적용되는 삶의 지침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성도들도 환난이 많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예외는 아닙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고 했습니다. 신앙생활 하는 데 고난이 있습니다. 알게 모르게 핍박이 있습니다. 물질만능주의 시대 속에서 성도들이 신앙을 지켜나간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내외적 환경들이 신앙생활을 방해합니다. 일례> 기독교 변증가 C.S 루이스 “스크루테이프편지”에서 삼촌바귀와 조카 마귀 웜우드의 하나님과 인간을 떼어 놓기 위한 전략/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위로와 격려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시는 위로와 격려의 말씀은 무엇일까요? 먼저 소망이 우리의 신앙생활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살펴보겠습니다.
1> 소망에는 위력이 있습니다(히10:23, 벧전3:15). ▪ 본문 히10:23, 벧전3:15절을 보십시다. ▶히10:23절에서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벧전3:15절에서는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들에게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소망이 있습니다. 누군가 혹 믿지 않는 사람이 조롱조로, 혹은 진지하게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때론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환난과 역경 속에서도 어떻게 그렇게 신앙을 지킬 수 있느냐? 이런 삶을 살아가는 당신 속에 있는 소망과 위로가 무엇이냐? 고 물을 때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과 구원의 소망에 관하여 확신 있는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일예> 마틴 루터 킹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 (이하생략) ▲그렇습니다. 흑백대립이 첨예하던 때 ‘마틴루터 킹 목사’가 흑인들을 대표해서 그들의 꿈을 미국 국민들 앞에서 당당하게 부르짖었던 것처럼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들에게는 소망이 있음을 확신있게 외쳐야 할 것입니다. ▶소망이 주는 삶의 위력이 있습니다. 소망은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선물이며, 가장 거친 삶의 시련 앞에서 힘과 용기를 얻는 근원입니다. 우리가 불행의 터널에 갇힐 때 소 망은 저 끝에서 비추는 한 줄기 빛입니다. 우리가 과로로 지칠 때, 소망은 우리에게 신선한 에너지를 줍니다. 우리가 낙담할 때, 소망은 우리에게 새 힘을 줍니다. 우리가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 소망은 우리로 계속 전진하게 합니다. 우리가 큰 질병이나 만성적인 질병과 싸울 때, 소망은 우리가 고통을 참고 이기도록 도와줍니다. 우리가 최악의 결과를 두려워할 때, 소망은 하나님이 여전히 주관하신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가 앉아서 기다릴 수밖에 없을 때, 소망은 믿고 기다릴 수 있게 해줍니다. 간단히 말해 삶이 상처를 입고 꿈이 흐려질 때, 소망만큼 도움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찰스 스윈들). 독일의 작가 에른스트 블로흐는 “인간은 끊임없이 희망을 품는 존재” 라고 말하였습니다. 인간에게 극한 상황에서도 인내와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만드는 힘은 희망입니다. 인간에게 희망이 있는 한, 어떠한 시련이라도 기꺼이 견뎌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희망이 없는 사람에게는 정열과 생활의 보람이 없습니다. 희망이 없으면 삶의 목표도 없기때문에 일시적 쾌락에 탐닉하여 방종 과 타락을 일삼거나 절망 속에서 삶을 포기하게 됩니다. 그래서 기독교 실존주의 철학자 ‘케에르케골’은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또한 영생에 이르는 길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끝은 하나님의 일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희망을 주시고 그 성취를 약속하셨습니다. 희망은 신앙과 확신 속에서 성장해 가는 미래의 열매이며, 인내와 갈망 속에서 표현되는 기대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 속에서 희망을 키우고 그리스도의 말씀 속에서 희망의 실현을 약속받은 자들은 결코 자신의 열악한 현실과 환경을 탓하지 않습니다. 참된 희망(소망)을 간직한 사람은 오로지 미래의 목표를 성취할 날을 고대하며 그날의 열매를 위해 오늘도 현실 속에서 성실히 땀을 흘립니다. 희망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을 미래의 축복을 향해 오로지 신앙과 노력을 양손에 쥐고 달려가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어떤 경우든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품고 삽시다. 그렇다면 성도의 소망은 어떤 것일까요?
2>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우리가 거듭나고 하늘나라를 상속받는 것입니다(벧전1:3-5) ▪ 본문 3-5절을 보십시다. ▶그리스도는 구원의 산 소망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케 하심으로 이를 믿은 자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성도들은 거듭남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여 소유하신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됩니다(롬6:1-8). 이렇게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내가 ‘거듭났다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것인가를 알 때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부활신앙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의 모습과 믿고 거듭난 이후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이었습니다(엡2:1-3). 세상풍조를 따르고 공중권세 잡은 자(마귀 사단)을 따랐습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행하여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엡2:3).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약속의 언약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였습니다(엡2:12). 그런데 이런 나를 하나님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엡2:5).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이 나를 죄에서 은혜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어둠에서 빛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영적 신분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들의 소망은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기업’과 ‘구원’입니다(4-5절).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실은 고난 중에 처한 성도들에게 인내의 근거가 됩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입니다(고전15:20).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고전15:17-20절의 말씀입니다. 또한 거듭난 자 즉 산 소망을 가진 자는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받게 됩니다(4절). 이 기업은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습니다. 이 기업은 우리의 노력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육신의 장막을 떠나기까지 이 세상에 머물러야 하는 우리 성도들은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 거룩한 나라를 유업으로 잇게 될 후사(상속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여기서 유업(기업)은 하나님나라(천국), 영생, 구원, 약속, 축복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또 산 소망을 가진 자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온 세상이 심판을 받을 때, 세상은 심판을 받지만 참된 믿음을 가진 모든 성도들은 구원이 온전히 성취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능력으로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크신 능력으로 구원에 이르도록 안전하게 보호해 주십니다(5, 롬8;35-39).
3> 시험으로 연단 받음은 온전한 구원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벧전1:6-9). ▪ 본문 6-9절을 보십시다. ▶본문은 구원받은 성도의 삶에 있어서 모순처럼 존재하는 믿음의 시련에 관한 말씀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말미암아 항상 평안하고 평탄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성도들의 삶은 반드시 형통하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의 삶에는 시련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믿음의 시련을 통하여 인내하며 연단되는 과정에서 성도들이 금보다 더 귀한 결실을 맺어갈 것이며(욥23:10), 마침내(예수님 재림 시)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받아 크게 기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에는 두 가지 민음이 있습니다. 시련을 이기는 믿음과 영혼을 구원하는 믿음입니다. 1) 시련을 이기는 믿음입니다(6절).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는가 하면 끝이 있게 마련입니다. 인생도 끝이 있고, 세계도 끝이 있습니다. 세계의 종말과 주의 재림은 톱니의 두 바퀴처럼 맞물려 있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성도들에게 따르는 여러 가지 고난은 하늘나라에 들어가고자 하는 자들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천로역정의 터널과도 같아서 이를 피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비록 현재에 고난을 당하여 근심에 빠진다할지라도 그러한 고난은 ‘잠시 동안만’ 있을 것이며(고전10:13), 그 후 종말론적 구원이 완성되는 때에는 현재 당하는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과 기업이 기다리기에 성도들은 산 소망 가운데 기뻐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롬8:17-18). 우리의 믿음을 지켜 주시는 하나님은 견고한 보장이 되십니다(5절). 종말에 하나님의 기업을 상속할 성도들은 구원의 완성 때까지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을 받습니다. 그러나 비록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다 할지라도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함으로 믿음 안에 거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믿음으로 모든 고난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극복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해야 합니다(벧전4:12-13, 약1:2-4, 롬5:3-4). 이런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히12:11). 2) 영혼을 구원하는 믿음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믿음입니다. 인간은 고난의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될 때에 신앙이나 인격의 진면목이 드러나게 됩니다. 평소에는 잘 구분이 안 되지만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참과 거짓이 확연히 구분되어집니다. 믿음은 시련을 극복할 뿐 아니라 영혼을 구원합니다. 믿음의 궁극적인 목표는 영혼의 구원입니다(9절). 우리는 무조건 앞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분명한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구원의 종교입니다(롬1:16-17).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롬1:16). 믿음의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로서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엡2:8-9).
4> 성도들의 구원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한 것이 성취된 것입니다(벤전1:10-12). ▪ 본문 10-12절을 보십시다. ▶구원에 관하여 이 구원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구원은 구약의 선지자들로부터 예언된 것입니다. 성도들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인류의 역사 속에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수없이 예언하신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것이며, 마지막 날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구원이 완성될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에 대한 예언의 시작은 창3장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창3:15). 하나님은 인류가 죄의 속성을 가지는 그 순간부터 구원을 계시함으로써 인류를 구원하기 시작하셨던 것입니다. 선지자들이 예언한 모든 구원의 내용들은 하나 둘씩 차례로 성취되었습니다. 성도를 위한 구원의 계시를 비롯하여 모든 계시의 주체자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분이 주신 계시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벧전1:10, 롬16:25-27).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고난을 극복하고 구원의 확신 속에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 모든 예언은 다 성취되었고 재림만을 남겨 놓고 있습니다. 그러니 성도는 성경의 말씀을 믿고 구원의 소망가운에 살지 않을 수가 없을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 세상은 환난이 많은 곳입니다. 어떤 고난과 역경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인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소망의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는 자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나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소망에는 위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소망이 있는 한, 어떠한 시련이라도 기꺼이 견뎌낼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우리가 거듭나고 하늘나라를 상속받기 때문입니다(3-5) ▶하나님이 그 크신 능력으로 우리의 믿음을 지킬 수 있게 하시어 구원에 이르도록 안전하게 보호해 주시기 때문입니다(5). ▶시험으로 연단 받음은 온전한 구원을 이루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6-9). 성도들의 삶에는 시련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믿음의 시련을 통하여 인내하며 연단되는 과정에서 성도들이 금보다 더 귀한 결실을 맺어갈 것이며, 마침내(예수님 재림 시)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받아 크게 기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의 구원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한 것이 성취된 것이기 때문입니다(10-12).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는 어떤 상황 하에서도 소망 가운데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산 소망이 있습니다. 바로 믿음의 결국 영혼구원입니다. 이 구원은 천국에 들어가는 구원입니다. 천국을 상속받아 인생의 종말에 영원한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인내하며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개인의 종말까지 믿음의 경주를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개인의 종말에 이렇게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딤후4장 7-8절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