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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워드프레스 KBoard 피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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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워드프레스 KBoard 피드</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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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나의 순종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킵니까?]]></title>
			<link><![CDATA[http://100ch.or.kr/wp/?kboard_content_redirect=375]]></link>
			<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justify;"><span style="color:#ff0000;"><b>[ </b><b>그들이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것을 붙들어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더라 </b><b>(</b><b>눅</b><b>23:26) ]   </b></span><b>하나님께 순종하려고 하면 우리에게도 희생이 요구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도 우리 때문에 희생을 치르게 됩니다</b><b>. </b><b>바로 이 부분에서 긴장이 발생합니다</b><b>. </b><b>주님을 깊게 사랑하면 그분을 향한 순종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b><b>. </b><b>오히려 기쁨입니다</b><b>. </b><b>그러나 그분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순종이란 희생일 뿐입니다</b><b>. </b><b>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면 반드시 다른 사람의 계획에 차질을 가져옵니다</b><b>. </b><b>따라서 그들은 이렇게 빈정댑니다</b><b>. "</b><b>이것이 기독교란 말이지</b><b>?" </b><b>우리는 이때 이 고통을 피할 수도 있습니다</b><b>. </b><b>그러나 하나님께 순종하려면 이러한 고통을 피해서는 안 됩니다</b><b>. </b><b>오히려 그 희생이 지불되도록 그냥 두어야 합니다</b><b>.  </b><b>인간적인 </b><b>'</b><b>교만</b><b>'</b><b>은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려고 안간힘을 씁니다</b><b>. "</b><b>나는 절대로 어느 누구에게도 아무 피해를 주지 않을 생각이야</b><b>." </b><b>하나님보다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면 오직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b><b>. </b><b>우리는 주님과의 관계보다 다른 그 어떤 관계를 더 고려해서는 안됩니다</b><b>(</b><b>눅</b><b>8:2-3).  </b><b>영적 침체는 아무에게도 영향을 주지 않고 모든 것을 스스로 하려고 할 때 찾아옵니다</b><b>. </b><b>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b><b>. </b><b>우리는 하나님의 전우주적인 목적과 너무나 깊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순간에 당장 다른 사람들이 영향을 받게 됩니다</b><b>. </b><b>당신은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충성스럽게 주님께 충성하겠습니까</b><b>? </b><b>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다른 길을 택하겠습니까</b><b>? </b><b>우리는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을 택할 수 있습니다</b><b>. </b><b>그러나 불순종을 택할 경우 우리는 잠간 그 불편한 상황을 피할 수는 있어도 하나님께는 근심 덩어리가 될 것입니다</b><b>. </b><b>그러나 하나님께 순종하면</b><b>, </b><b>우리의 순종으로 인해 마음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을 주님께서 친히 돌보실 것입니다</b><b>.   </b><b>주님께 순종함으로 인해 발생될 결과들에 대해 주님께 이런저런 요구를 하지 마십시오   </b><span style="color:#ff0000;"><b>(My Utmost for His Highest, </b><b>주님은 나의 최고봉</b><b>, </b><b>오스왈드 챔버스</b><b>)</b></span></p>]]></description>
			<author><![CDATA[관리자]]></author>
			<pubDate>Sat, 31 Oct 2026 22:51:01 +0000</pubDate>
			<category>믿음의 글</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나의 구원이시요 빛이신 여호와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시27:1-6)-]]></title>
			<link><![CDATA[http://100ch.or.kr/wp/?kboard_content_redirect=374]]></link>
			<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justify;"><span style="color:#ff0000;"><b>◆</b></span> <b>우리는 지금 참으로 격동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b><b>. </b><b>눈만 뜨면 사건사고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b><b>. </b><b>우리들은 불확실성의 시대 속에서 내일 일을 모르고 살아가는 연약한 인생인 것입니다</b><b>. </b><b>여기에 이 시대는 무한경쟁의 시대</b><b>, </b><b>약육강식의 시대</b><b>, </b><b>정글법칙이 지배하는 시대라고 합니다</b><b>. </b><b>그래서 사람들은 이 불확실한 시대</b><b>, </b><b>경쟁의 시대에 무언가를 의지할 곳을 찾고자 합니다</b><b>. </b><b>세상지식</b><b>, </b><b>경험</b><b>, </b><b>부</b><b>, </b><b>권세</b><b>, </b><b>명예 등 다양합니다</b><b>. </b><b>그러나 진정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인생의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없습니다</b><b>. </b><b>더욱 환난의 때에 우리의 영적 육적인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b><b>. </b><b>이러한 시대에 여러분은 어디를 바라보아야 할까요</b><b>? </b><b>세상을 바라보아야 뾰쪽한 방법은 그리 많지 않아 보입니다</b><b>. </b><b>오직 위에 계신 그분만이 해결의 열쇠입니다</b><b>. </b><span style="color:#ff0000;"><b>▶</b></span><b>본 시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b><b>. </b><b>전반부 </b><b>1-6</b><b>절은 궁극적인 승리에 대한 확신을</b><b>, </b><b>후반주 </b><b>7-14</b><b>절은 고통 속에서 드리는 간구와 미래의 확신입니다</b><b>. </b><b>오늘은 전반부 </b><b>1-6</b><b>절의 내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b><b>. </b><b>본 시는 특별히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통한 최종적인 구원의 확신</b><b>(6</b><b>절</b><b>)</b><b>이 그 근저에 깔려 있으므로 비탄 시이면서 신앙고백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b><b>. </b><b>본 시에는 평생을 전쟁터에서 보낸 용사로서 노도와 같이 밀려오는 대적을 눈앞에 두고도 담대하게 여호와 신앙을 선언하며 구원과 승리의 확신 속에서 담대하게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다윗의 용사와 같은 신앙 기개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b><b>. </b><b>다윗이 지금까지 체험한 여호와의 구원역사에 근거해서 자신이 지금 당장은 대적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지만 여호와를 의지함으로 안전하며 결국에는 대적들을 무찌르고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게 될 것에 대한 확신을 하나님과 사람 앞에 선전하고 있습니다</b><b>. </b><b>다윗은 아들 압살롬에게 쫒길 때 매우 위급한 지경에 있었습니다</b><b>. </b><b>수많은 대적들이 그를 치기 위해 둘러싸고 있었습니다</b><b>. </b><b>그러나 다윗은 자기 생명을 위협하는 악인의 군대와 위협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b><b>. </b><b>그 이유는 그가 여호와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b><b>. </b><b>그는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오직 성전만을 갈망하고 있습니다</b><b>. </b><b>시인에게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그의 일생동안 하나님의 전에 </b><b>거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고 또 은혜를 구하며 사는 일이었습니다</b><b>. </b><b>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구원해 주신 후에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서 감사의 예물을 드리고 하나님을 찬송하겠다고 고백합니다</b><b>. </b><b>이 시편은 어려운 중에 성도들이 할 수 있는 신앙고백과 용기와 위로를 주고 있기에 종종 찬송가 가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b><b>. </b><b>따라서 오늘 이 시의 </b><b>전반부에 해당하는 </b><b>1-6</b><b>절의 말씀을 살펴보면서 무한한 경쟁을 펼쳐야 하는 전쟁터와 같고 정글</b><b>과 같은 험하고 험한 이 세상의 삶속에서 오늘 우리 성도들이 가져야 할 신앙의 자세를 교훈하는 말씀으로 </b><b>들으</b><b>시기 바랍니다</b><b>. </b><b>우리의 신앙</b><b>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b><b>? </b><b>여호와를 의지하는 자</b><b>, </b><b>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b><b>...</b></p>
<p style="text-align:justify;"><span style="color:#ff0000;"><b>1&gt; </b><b>하나님을 향한 확신이 있는 자입니다</b><b>(</b><b>시</b><b>27:1-3).  </b></span><b>▪ </b><b>본문 </b><b>1-3</b><b>절을 보십시다</b><b>. </b><span style="color:#ff0000;"><b>▶</b></span><b>다윗이 확고부동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하나님께 대한 그의 신뢰로 증거하고 있습니다</b><b>. </b><b>그는 여호와로 인하여 자신이 안전할 것을 확신했습니다</b><b>. </b><b>주는 그의 </b><b>‘</b><b>빛</b><b>’ </b><b>이셨습니다</b><b>. </b><b>빛은 어두움을 내어 쫒는 능력으로</b><b>, </b><b>주께서 그의 공포</b><b>, </b><b>두려움</b><b>, </b><b>위험 등을 몰아내어 주심을 말하는 것입니다</b><b>. </b><b>비록 지금은 밤과 같은 곤경과 내적인 갈등이 그를 덮고 있지만</b><b>, </b><b>그는 여호와께서 그를 비추어 줄 빛이 되실 것을 믿고 </b><b>있었습니다</b><b>. </b><b>그는 현재 환경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그가 하나님과 함께 있는 한 태양 빛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b><b>.</b> <b>그가 하나님과 함께 있는 한 그 어떤 어두움도 그를 덮지는 못할 것입니다</b><b>(</b><b>사</b><b>60:19-20, </b><b>미</b><b>7:8) </b><span style="color:#ff0000;"><b>▶</b></span><b>또 다윗은 여호와를 자기의 구원</b><b>, </b><b>생명의 능력이라고 부릅니다</b><b>. </b><b>주는 그의 구원과 생명의 능력</b><b>(</b><b>피난처</b><b>)</b><b>이셨습니다</b><b>. </b><b>다윗을 둘러싸고 있는 대적들과 현재 그가 당한 모든 곤경에서 그를 구원해 주실 분은 여호와 하나님밖에 없었습니다</b><b>. </b><span style="color:#ff0000;"><b>▶</b></span><b>또한 다윗은 하나님을 자기의 생명의 힘이라고 부릅니다</b><b>. </b><b>하나님은 다윗을 사망의 위험으로부터 구하여 그에게 새힘을 공급해 주십니다</b><b>(</b><b>시</b><b>3:6, </b><b>시</b><b>18:1-2)</b><b>. </b><b>이와 같이 다윗은 하나님이 자기의 빛</b><b>, </b><b>구원</b><b>, </b><b>생명의 힘이라는 것을 굳게 믿고 </b><b>있었기에 극한 어려움 속에서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선언합니다</b><b>. </b><b>다윗은 그에게 악을 행하는 그의 대적들이 야수와 같이 자기의 살을 찢으려고 자기에게 왔으나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고 합니다</b><b>(2</b><b>절</b><b>). </b><b>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다윗의 편이 되어 그들을 자기가 판 함정에 빠지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b><b>. </b><b>그러므로 그는 군대가 일어나 그를 치려고 진을 치고</b><b>, </b><b>그를 죽이기 위해 전쟁이 일어난다도 해도 두려워하지 않고</b><b>, </b><b>평안히 거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b><b>(3</b><b>절</b><b>). </b><b>이러한 다윗의 평안과 확신의 근거는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었습니다</b><b>. </b><b>바로 </b><b>‘</b><b>임마누엘</b><b>’</b><b>의 신앙이었습니다</b><b>. </b><b>다윗은 시</b><b>23</b><b>편 </b><b>4</b><b>절에서 이렇게 고백</b><b>하고 있습니다</b><b>. “</b><b>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b><b>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b> <b>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b><b>” </b><b>또 요한복음 </b><b>16</b><b>장 </b><b>33</b><b>절에 </b><b>“</b><b>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b><b>가 세상을 이기었노라</b><b>”(</b><b>롬</b><b>8:35-39)</b><b>고 말씀하고 있습니다</b><b>. </b><b>임마누엘의 하나님은 세상을 이기</b><b>신 분이십니다</b><b>. </b><b>그러므로 성도 여러분</b><b>! </b><b>빛이신 하나님</b><b>, </b><b>구원이요</b><b>, </b><b>능력이시고</b><b>, </b><b>피난처이신 하나님을 </b><b>신뢰하</b><b>고 </b><b>모든 것을 그를 의지하고 맡기십시다</b><b>. </b><span style="color:#ff0000;"><b>★ </b><b>찬송 나는 선한 주님을 믿네</b><b>. </b><b>또 여호와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는</b><b>..</b></span></p>
<p style="text-align:justify;"><span style="color:#ff0000;"><b>2&gt; </b><b>하나님께 청할 소원이 있는 자입니다</b><b>(</b><b>시</b><b>27:4-5).  </b></span><b>▪ </b><b>본문 </b><b>4-5</b><b>절을 보십시다</b><b>. </b><span style="color:#ff0000;"><b>▶</b></span><b>다윗은 피난 중에서도 이렇게 하나님 안에서 평안과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b><b>. </b><b>그러나 그에게는 여전히 한 가지 소원이 남아 있었습니다</b><b>. </b><b>그것은 바로 그가 일생 동안 하나님의 전에 거하며</b><b>, </b><b>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하고 그 은혜를 구하는 것이었습니다</b><b>. </b><b>다윗은 압살롬으로 인해 피난했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b><b>. </b><b>그 때에 그는 하나님께 다시 성전에 거하며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은총을 구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b><b>. </b><b>곤경에 처한 다윗의 마음은 명예나 재물</b><b>, </b><b>또는 원수 갚는 일에 가 있지 않았습니다</b><b>. </b><b>그의 유일한 소원은 그가 사는 평생 동안 하나님의 전에 거하며</b><b>, </b><b>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갖는 것이었습니다</b><b>. </b><b>하나님과 동행하는 삶</b><b>, </b><b>곧 그와 더불어 사는 것이 그의 유일한 소원이었던 것입니다</b><b>. </b><b>여러분은 누구와 더불어 살기를 소원하고 있습니까</b><b>? </b><b>무엇과 더불어 살기를 소원하고 있습니까</b><b>? </b><b>다윗과 같은 소원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b><b>. </b><b>시편 곳곳에서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는 그의 소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b><b>(</b><b>시</b><b>23:6, 26:8, 84:2-12). </b><b>그는 성전에 깃들일 수 있는 제비와 참새를 부러워했습니다</b><b>. </b><b>그는 극한 곤경 중에서도 대적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b><b>. </b><b>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간절해질 때에 대적은 작아지고 하나님이 크게 보이는 법입니다</b><b>. </b><b>근심 걱정 두려움은 없어지고 믿음으로 인한 담대함이 생기는 법입니다</b><b>. </b><b>다윗이 하나님의 전에 거하기를 원한 것은 하나님께서 환난 날에 그의 피난처가 되어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b><b>(5</b><b>절</b><b>). </b><b>다윗은 하나님께서 환난 </b><b>날에 그의 원수들이 자기를 찾지 못하도록</b><b>, </b><b>하나님이 은밀한 곳에 숨겨주실 것이라고 고백합니다</b><b>. </b><b>하나님은 다윗이 환난 때에 피할 도피성이 되어 주셨고</b><b>, </b><b>그의 원수들을 막는 난공불락의 요새가 되어주셨습니다</b><b>. </b><b>하나님은 다윗을 은밀할 곳에 숨겨서 회오리처럼 불어 닥치는 곤경의 바람으로부터 그를 안전하게 지켜 주실 것입니다</b><b>. </b><b>또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바위 위에 높이 들어주실 것이라고 고백합니다</b><b>(5</b><b>절</b><b>, </b><b>시</b><b>40:2, </b><b>시</b><b>50:15). </b><span style="color:#ff0000;"><b>▶</b></span><b>다윗은 마지막 순간까지 오직 여호와의 집에 거하며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게 해 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b><b>. </b><b>이는 성전에 거하는 것이 엄청난 복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b><b>. </b><b>이 복은 </b><b>① </b><b>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합니다</b><b>(1-3</b><b>절</b><b>, </b><b>마</b><b>16:18). </b><b>② </b><b>환난 날에 지키고 </b><b>보호애 주십니다</b><b>(5</b><b>절</b><b>). </b><b>③ </b><b>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습니다</b><b>(</b><b>시</b><b>212, 124:8). </b><b>적용</b><b>&gt;</b> <b>그러므로 성전에 거함을 사모하십시다</b><b>. </b><b>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사모하십시다</b><b>. </b><b>이는 깊은 기도 가운데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 가운데서 체험할 수 있습니다</b><b>. </b><b>내 안에 계신 성령하나님과의 부단한 교제입니다</b><b>. </b><b>매일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하나님</b><b>을 인정하고 환</b><b>영하고 모셔들이십시오</b><b>. </b><b>그리고 그분이 영으로 임재하심을 체험하십시오</b><b>. </b><b>이것이 하나님과 통행하는 </b><b>삶이요</b><b>, </b><b>하나님의 전에 거하는 삶입니다</b><b>. </b><b>성령 안에서 그분과 하나 되는 삶입니다</b><b>. </b><b>또 여호와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는</b><b>..</b></p>
<p style="text-align:justify;"><span style="color:#ff0000;"><b>3&gt; </b><b>하나님을 찬송하는 자입니다</b><b>(</b><b>시</b><b>27:6)  </b><b>▪ </b></span><b>본문 </b><b>6</b><b>절을 보십시다</b><b>. </b><span style="color:#ff0000;"><b>▶</b></span><b>6</b><b>절 후반에 </b><b>‘</b><b>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b><b>’</b><b>고 말씀하고 있습니다</b><b>. </b><b>그는 하나님의 계속적인 보호와 원수들로부터의 궁극적인 승리를 확신했으므로 여호와를 찬송하고 있습니다</b><b>. </b><b>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자들을 보호하시고 머리를 들게 하십니다</b><b>. </b><b>하나님은 다윗을 그의 대적들이 보는 앞에서 다시 그의 영광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b><b>(</b><b>시</b><b>23:5). </b><b>다윗은 장차 그가 대적들로부터 구원을 받고</b><b>, </b><b>다시 예루살렘에 돌아가서 왕권을 회복할 것을 믿음으로 내다보고 있었습니다</b><b>. </b><b>그 때에 그는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 전에 나아가서 자기를 구원하시고 높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립니다</b><b>. </b><b>그리고 회중들과 함께 현악기의 반주에 맞추어 하나님</b><b>께 찬송을 드립니다</b><b>. </b><b>성도 여러분도 그분의 보호와 인도하심과 궁극적 승리로 인해 감사하며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b><b>. </b><b>따라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b><b>(</b><b>골</b><b>3:16). </b><b>그러므로 성도 여러분</b><b>! </b><b>오늘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의 다윗의 고백</b><b>(</b><b>찬양</b><b>)</b><b>이 바로 여러분의 신앙고백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b><b>. </b> <span style="color:#ff0000;"><b>◆ </b><b>말씀을 마칩니다</b></span><b><span style="color:#ff0000;">.</span> </b><b>실로 다윗은 견디기 힘든 위기의 순간마다 먼저 과거 자신에게 베푸신 여호와의 구원의 </b><b>은총을 기억하고 그러한 구원을 재차 호소하는 방법으로 가장 강력하고도 확실한 도움과 위로를 찾았던 것입니다</b><b>. </b><b>무슨 말입니까</b><b>? </b><b>과거 자신을 환난에서 구원해 주셨던 것처럼 지금도 구원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b><b>. </b><b>과거의 신앙의 체험을 통한 하나님을 </b><b>향한 믿음과 신뢰에 근거해서 지금도 도우실 것을 확신하는 간구입니다</b><b>.</b> <b>여러분도 이렇게 간구해 보십시오</b><b>. </b><b>과거의 신앙적인 체험이 오늘의 환난과 위기를 극복하는 데 이처럼 힘이 되는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b><b>. </b><b>사실 위기가 눈앞에 닥친 다급한 상황에서 과거의 구원사건을 회상하고 담담한 심정으로 간구하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b><b>. </b><b>우리 인간은 연약하여 과거의 일은 금방 잃어버리거나 대</b><b>수롭지 않게 여기고 현재의 고난은 그 어느 때보다 크고 심각한 것으로 생각하며 두려워 떨기가 얼마나 쉬운지 모릅니다</b><b>. </b><b>그러나 눈앞</b><b>의 일이 아무리 크고 위태해 보일지라도 그 보다 몇 천배 더 큰 일이라도 능히 해결하실 수 있는 여호와의 능력을 믿는 신앙이 있을 때</b><b>, </b><b>성도 여러분도 다윗과 같은 신앙의 기개를 가지고 이렇게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b><b>. “</b><b>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b><b>(1</b><b>절</b><b>), </b><b>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b><b>(3</b><b>절</b><b>)” </b><b>이렇게 담대히 외치며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조급해하지 않고 담대한 심정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기다릴 수 있는 절</b><b>대 신앙의 소유자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b><b>. </b><b>나의 빛이시오 구원의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는 하나님을 향한 확신이 있는 자입니다</b><b>. </b><b>하나님께 청할 소원이 있는 자입니다</b><b>. </b><b>이는 하나님의 성전에 거하는 것입니다</b><b>. </b><b>기도로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를 나누며 동행하는 삶입니다</b><b>. </b><b>교회 중심의 삶입니다</b><b>. </b><b>이런 것들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송하</b><b>는 것입</b><b>니다</b><b>. </b><b>사</b><b>40</b><b>장 </b><b>31</b><b>절의 말씀을 마음에 새깁시다</b><b>. “</b><b>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b><b>으</b><b>리</b><b>니 </b><b>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b><b>”</b></p>]]></description>
			<author><![CDATA[관리자]]></author>
			<pubDate>Fri, 30 Oct 2026 08:25:52 +0000</pubDate>
			<category>주일예배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네 가지 마음 밭의 비유(마13::1-23)]]></title>
			<link><![CDATA[http://100ch.or.kr/wp/?kboard_content_redirect=373]]></link>
			<description><![CDATA[<ul>
 	<li style="text-align:justify;"><strong><span style="color:#ff0000;"> 예수님은 천국의 비밀을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span><span style="color:#ff0000;">.</span> 이 비유 자체로는 ‘씨 뿌리는 자’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나(3-9절), 제자들에게 그 비유를 해석해 줄 때에는 ‘네 종류의 땅’으로 그 초점이 옮겨집니다(18-23절). <span style="color:#ff0000;">▲</span> 씨를 뿌리는 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뜻하는데 씨를 뿌릴 때는 그 자신이 직접 뿌리기도 하지만 그의 일군들을 통해 뿌리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설교하는 것이 바로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주의 종을 통해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 성도 여러분 마음의 밭에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여기서 씨는 천국말씀 즉 하나님의 말씀이고, 밭은 그 말씀을 받는 성도들의 마음의 상태를 말합니다(고전3:9). 고전3:9절에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span style="color:#ff0000;">▲</span> 이 씨가 뿌려진 땅은 사람들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씨가 밭에 떨어지는데 그 밭이 어떤 밭이냐에 따라 씨가 자라서 씨의 결실 여부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각기 자격과 성품이 다릅니다. 인간의 심령은 땅처럼 개간하여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땅과 같은 인간의 심령을 가꾸지 않고 그대로 방치한다는 것은 유감스런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종류의 땅은 아무리 많은 수고를 하고 또 그 땅에 아무리 좋은 씨를 뿌려도 기대한 것만큼의 좋은 결실을 맺지 못합니다. 그와 반면에 좋은 땅은 풍성한 결실을 맺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의 마음도 각기 다른 성품을 지녔는데 여기선 네 종류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세 종류의 성품에 속한 사람들은 결실을 맺지 못하고 단지 한 종류의 성품에 속한 사람들만이 좋은 결실을 맺습니다. 이에 비추어 보아 열매를 맺지 못하는 청중들의 수효가 아주 많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그리스도에게 직접 설교를 들었던 사람들도 좋은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경우가 아주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어떤 마음의 자세로 듣는가 하는 것은 신앙의 성장에 참으로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마음의 밭과 그 결실은 어떻게 다를까요? 네 가지의 성품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합시다.</strong></li>
 	<li style="text-align:justify;"><strong><span style="color:#ff0000;">1&gt; 길가 같은 성품을 지닌 사람입니다(마13:4, 19).  <span style="color:#003300;"><span style="color:#ff0000;">▪ </span>본문 4, 19절을 보십시다</span>. ▶<span style="color:#333300;">여기서 ‘길’ </span></span><span style="color:#333300;">은 어떤</span> 모습일까요? 이 길은 사람들의 잦은 왕래로 인해 단단하고 반질반질하게 다져집니다. 그 결과 길가의 땅은 너무 딱딱하게 굳어있기 때문에 씨를 받아들일 수 없으므로, 길가에 뿌려진 씨는 흙속에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새들(악한자, 사단, 마귀)이 먹어치우게 됩니다. 본문에서 길가의 ‘땅’은 마음의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청중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마음이 굳어져 새로운 씨가 자신의 내부에 뿌려질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인간의 영혼이 복음으로 대표되는 새 진리에 대하여 아예 처음부터 철저히 배격, 거부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span style="color:#ff0000;">◼</span>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의식적인 원인으로서 자기 자신의 경험이나 학식만을 최고의 것으로 생각하고 그것만을 고집하는 교만과 독선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무의식적 원인으로서 이 땅에서의 삶이나 목숨보다는 영생</strong><b>의 문제라고 하는 복음의 중대성과 심각성을 채 깨닫지 못하여 아예 처음부터 복음에 대한 관심을 두지 않으려는 경솔한 무지와 부주의한 태만에 의한 것입니다</b><b>. </b><span style="color:#ff0000;"><b>▲</b></span><b>이러한 자들의 마음 밭에 씨가 떨어지매 새들</b><b>(</b><b>악한자</b><b>, </b><b>사단</b><b>, </b><b>마귀</b><b>)</b><b>이 와서 먹어버렸다는 것입니다</b><b>. </b><b>이는 천국의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 악한 자 즉 사단이 와서 그 바닥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셨습니다</b><b>. </b><b>이러한 마음 밭을 가진 성도는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는 귀머거리요 장님 같은 성도입니다</b><b>. </b><b>이들은 자기들이 들은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며 단지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버립니다</b><b>. </b><b>하나님의 말씀에 이와 같이 관심이 없고 부주의하며 진지하지 못한 청중들은 쉽사리 사단의 먹이가 됩니다</b><b>. </b><b>사단은 영혼을 살해하는 대 학살자인 동시에 설교를 통해 뿌려지는 씨를 빼앗는 큰 강도이기도 합니다</b><b>. </b><b>만일 우리가 말씀을 받아들이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통하여 놀고 있는 마음의 땅을 일구지 않고</b><b>, </b><b>명상과 기도를 통해 마음속에 뿌려진 씨를 덮지 않으며</b><b>, </b><b>우리의 들은 것에 더 열심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b><b>, </b><b>우리는 길가에 뿌려진 자와 같게 되는 것입니다</b><b>. </b><b>실로 길가 밭과 같은 사람은 씨앗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거부하였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선과 악</b><b>, </b><b>하나님과 사단</b><b>, </b><b>천국과 멸망의 길이 판가름 나는 결정적인 것입니다</b><b>. </b><b>지금도 사단은 기회만 있으면 성도들이 믿어 구원받지 못하게 거부된 씨앗을 빼앗아가기 위해 혈안이 된 채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b><b>있습니다</b><b>. </b><b>그러므로 성도 여러분</b><b>~! </b><b>공중권세 잡은 사단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b><b>다</b><b>는 사실을 명심하여 마귀를 대적해야 할 것입니다</b><b>(</b><b>벧전</b><b>5:8). </b><b>그리하면 마귀는 우리를 피할 것입니다</b><b>(</b><b>약</b><b>4:7).</b></li>
 	<li style="text-align:justify;"><span style="color:#ff0000;"><b>2&gt; </b><b>돌밭 같은 성품을 지닌 사람입니다</b><b>(</b><b>마</b></span><b><span style="color:#ff0000;">13:5-6, 20-21). </span>  </b><b>▪ </b><b>본문 </b><b>5-6, 20-21</b><b>절을 보십시다</b><b>. </b><span style="color:#ff0000;"><b>▶</b></span><b>흙이 얇은 돌밭이란</b><b>? </b><b>팔레스타인지방에서는 아주 흔한 지형으로 석회층 지층 위에 얇은 지표가 형성되어 있어서 자연히 바위의 온기에 의해 뿌리가 쉽게 나오지만 흙이 깊지 않아서 뿌리가 쉽게 성장할 수 없는 곳을 가리킵니다</b><b>. </b><b>이러한 돌밭에 떨어진 씨도 싹이 납니다</b><b>. </b><b>그러나 타는 듯한 태양열을 견디려면 뿌리가 땅속 깊이 박혀있어야만 수분의 공급을 계속 받을 수 있습니다</b><b>. </b><b>그러나 돌밭에 뿌려진 씨의 경우 싹이 나기는 하지만 뿌리가 땅속 깊이 박히지 못하기 때문에 뜨거운 태양열을 견디지 못합니다</b><b>. </b><b>길가의 밭과 같은 사람들은 진리를 전혀 인식하거나 파악할 수 없는 자들이라고 한다면</b><b>, </b><b>돌밭과 같은 사람들은 진리를 단순하고도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자들을 대표합니다</b><b>. </b><b>이들은 흙이 얇은 돌밭과 같이 껍데기는 부드럽지만 그 속은 아직도 깨어지지 않는 완악한 상태의 심성을 가진 사람을 가리킵니다</b><b>. </b><b>흙의 얇음이란 표현에서도 드러나듯</b><b>, </b><b>그들은 자신들의 얄팍한 지식을 의지한 자들로 그 속마음은 성령에 의하여 부서지지 않고 자기 아집과 주장으로 가득 찬 사람들입니다</b><b>. </b><b>즉 천박한 지식과 자기 아집과 주장이 강한 사람들입니다</b><b>. </b><b>이런 자들의 특징은 그 행동은 빠르나 지속적이지 못하다고 하는 것입니다</b><b>. </b><span style="color:#ff0000;"><b>▲</b></span><b>특히 물질문명의 발달로 인하여 사람들의 심성이 깊이가 없어지고</b><b>, </b><b>또한 기계화된 인간관계 속에서 참된 인간성이 결여되고 사랑이 없는 메마른 감정의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b><b>. </b><b>곧 딤후</b><b>3</b><b>장 </b><b>1-5</b><b>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말세의 현상과 같은 현상입니다</b><b>(</b><b>찾아읽기</b><b>)</b><b>. </b><b>실로 복음의 진리를 성장시키기 위한 영적 토양이 부족한 상태에서는 어떤 선한 목적을 추구한다 해도 선한 열매를 거둘 수 없을 것입니다</b><b>.</b><b>일관성과 성실성 그리고 끈기가 요구되는 신앙생활이 이제 막 시작되었는데</b><b>, </b><b>예기치 않는 어떤 시련에 봉착하게 되면 곧 그 복음의 씨는 말라버리게 됩니다</b><b>. </b><b>이런 자에게서는 영적 소망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b><b>. </b><span style="color:#ff0000;"><b>▲</b></span><b>5</b><b>절에서 </b><b>‘..</b><b>떨어지매 흑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b><b>’ </b><b>라고 합니다</b><b>. </b><b>해빛에 타서 뿌리도 생기기 전에 말라 버렸습니다</b><b>. </b><b>이는 말씀을 기쁨으로 받되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 넘어지는 자입니다</b><b>(20-21</b><b>절</b><b>). </b><b>환난 날이 임할 때 뿌리가 없는 자들은 곧 쓰러지고 맙니다</b><b>. </b><b>이들은 먼저 자신들의 신앙고백과 갈등이 생기면서 그 신앙고백을 포기하게 됩니다</b><b>. </b><b>핍박은 말라죽게 하는 태양으로 비유되었습니다</b><b>(6</b><b>절</b><b>). </b><b>그 태양은 뿌리가 잘 뻗은 나무에 대해서는 적당한 온도로 소중히 기르지만 뿌리가 빈약한 나무에 대해서는 시들게 하며 말라죽게 합니다</b><b>. </b><b>시험을 받으면 동요를 일으키는 사람들도 있지만 오히려 더 확고해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b><b>(</b><b>빌</b><b>1:12). </b><b>이들이 얼마나 빨리 말라죽는지 주목해 봅시다</b><b>. </b><b>깊이 생각해 보지 않고 행한 신앙고백은 대개 무심코 </b><b>입 밖에 내는 말에 불과할 뿐입니다</b><b>. </b><b>얻기 쉬운 것은 없어지기도 쉽습니다</b><b>. </b><b>쉽게 얻는 것은 쉽게 없어집니다</b><b>(Easy come easy out). </b><b>이는 핍박을 이긴 후에 오는 복을 보지 못하는 자입니다</b><b>(</b><b>롬</b><b>8:18). “</b><b>생각하건대 현재</b><b>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b><b>” </b><b>이것도 귀머거리나 장님 성도의 한 형태입니다</b><b>. </b></li>
 	<li style="text-align:justify;"><span style="color:#ff0000;"><b>3&gt;</b> <b>가시떨기와 같은 성품을 지닌 사람입니다</b><b>(</b><b>마</b><b>13:7, 22). </b><b>▪ </b></span><b>본문 </b><b>7, 22</b><b>절을 보십시다</b><b>. </b><span style="color:#ff0000;"><b>▶</b></span><b>가시나무는 기후가 건조한 팔레스타인에서는 거의 사계절을 다 볼 수 있으며 </b><b>200</b><b>여종이나 된다고 합니다</b><b>. </b><b>성경에서 가시는 주로 </b><b>‘</b><b>악을 행하는 자</b><b>(</b><b>삼하</b><b>23:6), </b><b>저주</b><b>(</b><b>창</b><b>3:18), </b><b>황폐함</b><b>(</b><b>사</b><b>9:18),’ </b><b>등으로 상징됩니다</b><b>. </b><b>여기서 가시 떨기는 천국 복음에 대한 신앙적 장애요소로서</b><b>, </b><b>복음의 씨의 기운을 꺾어버리게 하는 모든 것들을 가리킵니다</b><b>. </b><b>이러한 밭에서는 성장력이 강한 가시나무는 잘 자랄 수는 있지만 다른 채소나 곡식은 결코 함께 자랄 수 없는 거친 땅입니다</b><b>. </b><b>팔레스타인 땅에서는 개간 된 밭 옆에 가시떨기가 자라기도 하며</b><b>, </b><b>이곳</b><b>에 밀이나 보리씨가 떨어져 같이 자라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b><b>. </b><b>이 때 곡식 낱알의 푸른 껍질까지는 생기지만 내용물은 전혀 없다고 합니다</b><b>. </b><b>이러한 측면에서 주를 알고 믿은 지 상당히 오래 되었으나 의와 사랑의 열</b><b>매를 맺지 못한 성도들의 대부분은 이 부류의 땅에 해당한다고 하겠습니다</b><b>. </b><span style="color:#ff0000;"><b>▲</b></span><b>가시 떨기 밭에 떨어진 씨는 가시가 기운을 막아서 씨앗이 자랄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b><b>(7</b><b>절</b><b>). </b><b>이는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한 자를 가리킵니다</b><b>(22</b><b>절</b><b>). </b><span style="color:#ff0000;"><b>▶</b></span><b>원문으로는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이 </b><b>‘</b><b>말씀을 질식시킨다</b><b>.’</b><b>로 되어 있습니다</b><b>. </b><b>이는 세상 욕심이 영혼의 양식과 청결한 공기 및 거룩한 햇빛을 날마다 공급받아야 하는 우리의 영적 숨통을 졸라 질식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b><b>. </b><b>정녕 말씀의 성장을 위한 노력보다는 세상의 악한 세력들이 주는 환상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결국 그 세상이 지닌 파괴적인 영향력으로 인해 거룩한 신앙적인 성품과 영적 생명력을 모두 잃게 될 것입니다</b><b>. </b><b>그래서 재리에 대해서 마</b><b>6:24</b><b>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b><b>. “</b><b>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b><b>” </b><span style="color:#ff0000;"><b>▶</b></span><b>세상의 염려는 믿는 자로 영혼의 상처와 믿음의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합니다</b><b>. </b><b>고후</b><b>7:10</b><b>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b><b>. “</b><b>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b><b>” </b><b>그렇습니다</b><b>. </b><b>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구원에 이르게 하지만</b><b>, </b><b>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게 됩니다</b><b>. </b><b>또한 예수님은 마</b><b>6:19-34</b><b>절에서도 염려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공중의 새와 백합화를 예로 들고 염려 대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b><b>. </b><b>소결</b><b>&gt;</b><span style="color:#ff0000;"><b>▲ </b></span><b>결론</b><b>적으로 </b><b>7</b><b>절에서 가시 떨기가 기운을 막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b><b>? </b><b>믿는 자들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루어나가는 모든 영적생활을 훼방하거나 혼돈 시키는 것을 말합니다</b><b>. </b><b>길가 밭과 돌밭의 경우는 주로 밭 내부에 문제가 있었으나</b><b>, </b><b>여기 가시 밭은 밭 외부에 문제가 있는 경우입니다</b><b>. </b><b>즉 전자의 경우들은 마음 밭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어 씨앗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았지만</b><b>, </b><b>후자의 경우는 마음 밭 자체에는 문제가 없으나 그 마음 밭에 영적 성장에 장애가 될 만한 부정적 요소들이 많이 내재되어 있습니다</b><b>. </b><b>즉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 등입니다</b><b>. </b><b>여기서 우리는 열매 맺는 좋은 밭이 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마음 밭 내부도 좋아야 하지만 외적으</b><b>로 각종 신앙적 장애를 극복해 나갈 수 있</b><b>는 기운찬 영적 생명력과 진취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b><b>. </b><b>세상적인 염려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유익을 얻는 데 큰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b><b>, </b><b>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쏟아야 할 영혼들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웁니다</b><b>(</b><b>고후</b><b>7:10). </b><b>또 우리가 재리를 신뢰하고 그것에 대한 기대를 크게 가질수</b><b>록 그 재리는 하나님의 좋은 씨를 말라죽게 하는 것입니다</b><b>(</b><b>마</b><b>6:24). </b><b>성예</b><b>&gt;</b> <b>부자청년</b><b>, </b><b>영생을 얻으려면 </b><b>(</b><b>마</b><b>19:16-24)</b></li>
 	<li style="text-align:justify;"><span style="color:#ff0000;"><b>4&gt; </b><b>좋은 땅과 같은 성품을 지닌 사람입니다</b><b>(</b><b>마</b><b>13:8, 23).  </b></span><b>▪ </b><b>본문 </b><b>8, 23</b><b>절을 보십시다</b><b>. </b><span style="color:#ff0000;"><b>▶</b></span><b>좋은 땅이란</b><b>? </b><b>땅이 기름지고 수분이 충분할 뿐만 아니라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위치하며</b><b>, </b><b>적절한 지력이 보존되어 있고</b><b>(</b><b>레</b><b>25:4-5), </b><b>잡초들과 같은 씨앗의 성장에 불필요한 것들이 제거된 순수한 땅을 가리킵니다</b><b>. </b><b>이는 귀 기울여 말씀을 진지하게 듣고</b><b>, </b><b>순종하는 겸손한 마음을 소유함으로써 성령의 열매</b><b>(</b><b>갈</b><b>5:22-23)</b><b>를 풍성히 거두는 성공적인 청중들의 상태를 말합니다</b><b>(</b><b>살전</b><b>2:13, </b><b>행</b><b>17:11-12). </b><b>이는 데살로니가 교인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그 말씀이 믿는 자들 가운데서 역사가 일어났고</b><b>, </b><b>또 베뢰아 사람들처럼 마음이 너그럽고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성경을 날마다 상고하는 신앙적 자세를 가진 자를 말합니다</b><b>. </b><b>진리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영혼의 심지가 깊고 성실한 자</b><b>. </b><b>신앙적 줏대가 있고 진리에 대해 순박한 자를 가리킨다 하겠습니다</b><b>. </b><b>이런 자들이 거둘 수 있는 영적 수확은 백배</b><b>, </b><b>육십 배</b><b>, </b><b>삼십 배의 수확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b><b>. </b><b>이는 결실을 맺는 데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는 숫자입니다</b><b>. </b><span style="color:#ff0000;"><b>▲</b></span> <b>‘</b><b>결실하였느니라</b><b>’</b><b>에서 헬라어 원문은 </b><b>미완료 과거시제</b><b>를 취하고 있는데</b><b>, </b><b>이는 결실이 어느 한계점에 도달할 만큼 겨우 이뤄진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생명력 넘치게 결실 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b><b>. </b><b>여기 결실은 내적으로 복음 씨앗을 받은 각 성도의 영적 진보를</b><b>, </b><b>외적으로는 구속사 전개에 따른 천국시민의 수적 증가를 동시에 나타냅니다</b><b>(</b><b>질적 양적 성장</b><b>). “</b><b>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b><b>”. </b><b>좋은 씨는 항상 좋은 땅에 뿌려져야 만이 아무런 손실이 없습니다</b><b>.  </b><b>그와 같은 사람들이란 바로 </b><b>'</b><b>말씀을 듣고 깨달은 자</b><b>'</b><b>입니다</b><b>(23</b><b>절</b><b>). </b><b>그리스도는 이 좋은 땅에 아무런 돌멩이나 가시떨기도 없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b><b>. </b><b>그리스도의 말씀은 오히려 이 좋은 땅에도 돌멩이와 가시떨기가 있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b><b>. </b><b>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성도들은 그들 속에 남아 있는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지만 다행히 죄의 권세로부터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b><b>. </b><b>좋은 땅으로 표현된 청중들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지닌 사람들입니다</b><b>. </b><b>첫째로</b> <b>그들은 깨닫는 사람들입니다</b><b>. </b><b>그들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들입니다</b><b>. </b><b>그들은 말씀의 의미 뿐 아니라 그들이 그 말씀에 대해 보이는 자신들의 관심까지도 깨닫습니다</b><b>. </b><b>그리고 그들은 사업가가 자기의 사업을 파악하고 있는 것처럼 말씀을 깨닫고 있는 것입니다</b><b>. </b><b>둘째로</b> <b>그들은 많은 결실을 맺는 자들입니다</b><b>.  </b><b>많은 결실들은 그들이 말씀을 잘 깨달았다는 것에 대한 증거가 됩니다</b><b>. </b><b>우리는 말씀에 따라 실천을 할 때 결실을 맺습니다</b><b>(</b><b>롬</b><b>2:13). </b><b>그러므로 우리는 가르침을 받은 대로 실천해야 합니다</b><b>. </b><b>셋째로</b> <b>그들은 모두 열매 맺는 정도가 다릅니다</b><b>. </b><b>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가 되느니라</b><b>(23</b><b>절</b><b>). </b><b>열매를 많이 맺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도 다른 그리스도인들보다 더 많은 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것입니다</b><b>. </b><b>진실한 은혜가 머무는 곳이라도 그 은혜의 정도는 다른 것입니다</b><b>. </b><b>그것은 모든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다 동일한 방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b><b>. </b><b>그러나 만일 땅이 좋아 열매가 충실하게 맺어진다면 비록 삼십 배의 결실을 맺은 사람들이라도 하나님에게 인정을 받을 것이며 또 그 삼십 배의 </b><b>결실은 다른 사람들이 맺은 결실과 같은 많은 결실로 인정을 받을 것입니다</b><b>.</b></li>
 	<li style="text-align:justify;"><span style="color:#ff0000;"><b>♥ </b><b>말씀을 마칩니다</b></span><b><span style="color:#ff0000;">.</span> </b><span style="color:#ff0000;"><b>▲</b></span><b>이 비유에 제시된 밭은 숙명적이 아닙니다</b><b>. </b><b>누구나 이런 네 가지의 밭 같은 마음의 상태가 있을 수 있습니다</b><b>. </b><b>그러나 성도들이 어떤 마음의 자세로 천국의 말씀을 듣고 화전민이 척박한 땅을 개간하듯이 말씀과 기도로 마음 밭을 개척해 가는가에 따라 그 길가 같고</b><b>, </b><b>돌밭 같고</b><b>, </b><b>가시떨기가 자라는 밭 같은 마음</b><b>(</b><b>성품</b><b>)</b><b>에서 옥토 같은 마음</b><b>(</b><b>성품</b><b>)</b><b>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b><b>. </b><span style="color:#ff0000;"><b>▶</b></span><b>길가에 뿌려진 씨는 악한 자가 와서 빼앗아가는 결과를 초래합니다</b><b>. </b><b>사단은 성도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빼앗으려 합니다</b><b>. </b><b>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악한 자에게서 성도를 지켜주십니다</b><b>(</b><b>요일</b><b>5:18). </b><span style="color:#ff0000;"><b>▶</b></span><b>그리고 돌밭에 뿌려진 씨앗의 결과는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환난 때에 넘어집니다</b><b>. </b><b>그러므로 성도는 그리스도께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b><b>(</b><b>골</b><b>2:6, 7). </b><b>그러면 시련이나 역경이 와도 이길 수 있습니다</b><b>. </b><span style="color:#ff0000;"><b>▶</b></span><b>또한 가시떨기에 뿌려진 씨앗의 결과는 말씀을 듣지만 세상 근심과 재리의 유혹에 막혀 결실을 맺지 못합니다</b><b>. </b><b>성도가 세상이나 재물을 바라보면 실패하게 됩니다</b><b>. </b><b>재물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고 우리는 청지기임을 인식할 때 이러한 유혹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b><b>. </b><b>또한 근심은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이라야 할 것입니다</b><b>. </b><b>세상 근심은 사망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b><b>. </b><span style="color:#ff0000;"><b>▶</b></span><b>그러나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의 결과는 말씀을 듣고 깨달아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b><b>. </b><b>적용</b><b>&gt;</b><b>그러므로 말씀을 들을 때</b><b>, </b><b>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b><b>(</b><b>살전</b><b>2:13), </b><b>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b><b>(</b><b>행</b><b>17:11) </b><b>듣고 실천해야 </b><b>될 줄로 믿습니다</b><b>. </b><b>내 마음의 밭을 주의 말씀과 기도로 개간하고 경작하여 백배의 결실을 얻는 마음의 밭으</b><b>로 변화되어 믿음의 결국 영혼구원</b><b>, </b><b>끝까지 이긴 자 되어 천국을 상속받는 자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b><b>.</b></li>
</ul>]]></description>
			<author><![CDATA[관리자]]></author>
			<pubDate>Sat, 24 Oct 2026 15:35:24 +0000</pubDate>
			<category>주일예배설교</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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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하나님의 러브레터 (love letter)]]></title>
			<link><![CDATA[http://100ch.or.kr/wp/?kboard_content_redirect=372]]></link>
			<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justify;"><span style="color:#ff0000;"><b>“</b> <b>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은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b><b>”[</b><b>요</b><b>3:16</b></span><b><span style="color:#ff0000;">] </span> </b><b>너는 나를 잘 모를지 모르지만 나는 너를 너무도 잘 안단다</b><b>...(</b><b>시</b><b>139:1)</b><b>너의 앉고 일어섬을 알고</b><b>......(</b><b>시</b><b>139:2), </b><b>너의 모든 행위를 알며</b><b>....(</b><b>시</b><b>139:3) </b><b>너의 머리털을 다 셀 정도지 </b><b>......(</b><b>마</b><b>10:29-31), </b><b>이는 내 형상대로 너를 만들었기 때문이다</b><b>.(</b><b>창</b><b>1:27) </b><b>너는 항상 내 안에서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b><b>......(</b><b>행</b><b>17:28), </b><b>너는 나의 소생이니라</b><b>....(</b><b>행</b><b>17:28), </b><b>복중에 짓기 전에 내가 너를 알았고</b><b>.....(</b><b>렘</b><b>1:4-5), </b><b>창세 전에 내가 너를 택하였도다</b><b>. ....(</b><b>엡</b><b>1:11-1·2), </b><b>너는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다</b><b>.</b> <b>너를 위해 정한 날이 내 책에 다 기록되어 있었고</b><b>......(</b><b>시</b><b>139:15-16) </b><b>너의 태어날 때와 살 곳을 정하였으며</b><b>....(</b><b>행</b><b>17:26), </b><b>너를 신묘막측하게 만들어 </b><b>......(</b><b>시</b><b>139:14), </b><b>어미의 모태에서 지었고 </b><b>.....(</b><b>시</b><b>139:13), </b><b>내 너를 취하여 태어나게 하였다</b><b>..... (</b><b>시</b><b>71:6), </b><b>나를 모르는 자들이 나를 잘 못 알렸다만 </b><b>.....(</b><b>요</b><b>8:41-44), </b><b>나는 너와 함께 있는 사랑이니라</b><b>....(</b><b>요일</b><b>4:16), </b><b>이 사랑을 너에게 아낌없이 주련다</b><b>.....(</b><b>요일</b><b>3:1), </b><b>너는 나의 자녀이고 나는 너의 아비니라</b><b>.....(</b><b>요일</b><b>3:1), </b><b>육신의 아비가 줄 수 없는 것을 주리라</b><b>......(</b><b>마</b><b>7:11), </b><b>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내게로부터 오나니</b><b>....... (</b><b>약</b><b>1:17), </b><b>네게 있어야 할 것을 내가 아니라</b><b>.......(</b><b>마</b><b>6:31-33), </b><b>너를 향한 나의 생각은 평안이요 너의 장래에 소망을 주려는 것은</b><b>........(</b><b>렘</b><b>29:11), </b><b>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b><b>.......(</b><b>렘</b><b>31:3), </b><b>너를 향한 나의 마음을 헤아릴 수조차 없구나</b><b>.......(</b><b>시</b><b>139:17-18), </b><b>나는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노래 부르며</b><b>......(</b><b>습</b><b>3:17), </b><b>너에게 복주기를 멈추지 아니하리니</b><b>......(</b><b>렘</b><b>32:40)  </b><b>너는 나의 소유니라</b><b>.....(</b><b>출</b><b>19:5), </b><b>내가 기쁨으로 너에게 복을 주며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해 너를 이 땅에 심으리라</b><b>.....(</b><b>렘</b><b>32:41), </b><b>보아라 네가 알지 못한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b><b>......(</b><b>렘</b><b>33:3), </b><b>네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구하면 나를 만나리니</b><b>........(</b><b>신</b><b>4:29), </b><b>나를 기뻐하라</b><b>. </b><b>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리라</b><b>......(</b><b>시</b><b>37:4), </b><b>네가 소원을 두고 행하기를 원하노라</b><b>....(</b><b>빌</b><b>2:13), </b><b>네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넘치도록 주리니</b><b>......(</b><b>엡</b><b>3:20), </b><b>나는 너의 위로자니라 </b><b>......(</b><b>살후</b><b>2:16-17), </b><b>모든 환난 중에도 너를 위로할지</b><b>니</b><b>.....(</b><b>고후</b><b>1:3-4), </b><b>너의 마음이 상할 때 내가 너를 더욱 가까이 하리라</b><b>......(</b><b>시</b><b>34:18)</b> <b>양을 안는 목자 같이 내가 너를 품속에 안으리라</b><b>.......(</b><b>사</b><b>40:11)</b></p>]]></description>
			<author><![CDATA[관리자]]></author>
			<pubDate>Wed, 21 Oct 2026 18:42:38 +0000</pubDate>
			<category>전도 편지</category>
		</item>
				<item>
			<title><![CDATA[“하나님을 만난 위대한 사람(President Abraham Lincoln)(1809-1865)”]]></title>
			<link><![CDATA[http://100ch.or.kr/wp/?kboard_content_redirect=371]]></link>
			<description><![CDATA[<span style="color:#ff0000;"><b>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b><b>.</b><b>“(</b><b>요</b><b>8: 12) </b></span>
<p style="text-align:justify;"><b>“</b><b>나는 노예를 해방하겠다고 하나님과 약속했다</b><b>.“ </b><b>미국의 제 </b><b>16</b><b>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하나님을 만나 위대한 꿈을 꾸었고</b><b>, </b><b>암흑으로 가득찼던 수백만의 흑인 노예들을 해방시킴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겼으며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b><b>2</b><b>위</b><b>(1</b><b>위 예수님</b><b>)</b><b>에 선정되었다</b><b>.  </b><b>하나님이 자기를 만드셨기 때문에 자기는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b><b>확신하는 사람을 비참한 사람으로 만들기는 어렵다</b><b>(</b><b>아브라함 링컨</b><b>) </b><b>하나님을 만나면 당신의 삶이 변화됩니다</b><b>.  </b><b>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b><b>(</b><b>고후</b><b>5:17) </b><b>하나님은 당신의 모든 문제의 해결자 이십니다</b><b>. </b><b>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b><b>(</b><b>마</b><b>11:28)  </b><b>하나님은 당신의 상처를 치유하십니다</b><b>. </b><b>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b><b>, </b><b>달음박질 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b><b>(</b><b>사</b><b>40:31).</b></p>
<p style="text-align:justify;"><span style="color:#ff0000;"><b>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b><b>. </b><b>천국과 지옥은 분명히 있습니다</b><b>.  </b><b>예수님을 믿어야 천국갑니다</b><b>. </b></span></p>]]></description>
			<author><![CDATA[관리자]]></author>
			<pubDate>Wed, 21 Oct 2026 18:39:08 +0000</pubDate>
			<category>전도 편지</category>
		</item>
				<item>
			<title><![CDATA[큰 구원]]></title>
			<link><![CDATA[http://100ch.or.kr/wp/?kboard_content_redirect=370]]></link>
			<description><![CDATA[<strong></strong>
<p style="text-align:justify;"><span style="color:#ff0000;"><b>“</b> <b>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b><b>(</b><b>하나님의 구원을</b><b>) </b><b>어찌 피하리요</b><b>”</b><b>[</b><b>히</b><b>2:3]   </b></span><b>미국의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b><b>. </b><b>정부는 귀빈을 잘 모시기 위해서 한국의 아주 귀한 음식을 오랜 시간 정성껏 준비하고 그날 밤 극진히 접대했습니다</b><b>. </b><b>그런데 그 대통령이 그 음식을 먹지는 아니하고</b><b>, </b><b>왜 이런 그릇에 담았느냐</b><b>, </b><b>맛이 왜 이러느냐 트집을 잡으며 상을 뒤집어엎어 버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b><b>? </b><b>그것은 귀빈을 극진히 대접하는 모든 국민들의 사랑을 우롱하는 일이요</b><b>. </b><b>지독한 모독이요</b><b>. </b><b>도저히 참을 수 없는 자존심 문제로 비화됩니다</b><b>. </b><b>온 세상이 이 소식을 듣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분개할 것입니다</b><b>. </b><b>이와 똑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습니다</b><b>. </b><b>하나님은 모든 인생에게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하시고 그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b><b>.  </b><b>하나님은 모든 인생들의 죄악을 아들에게 홀로 지우시고 갈보리 언덕 십자가 위에서 모든 인류 대신에 아들을 죽이시고 심판을 끝내셨습니다</b><b>. </b><b>죄의 값이 다 지불 되었습니다</b><b>.  </b><b>이제 구원의 밥상은 차려졌습니다</b><b>. </b><b>이것은 오랜 시간 동안 엄청난 하나님의 희생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b><b>. </b><b>이제는 누구든지 먹기만</b><b>(</b><b>주 예수를 믿기만</b><b>) </b><b>하면 됩니다</b><b>. </b><b>그런데 그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하며</b><b>, </b><b>하나님이 왜 내 인생에 간섭하느냐</b><b>, </b><b>차라리 내 주먹을 믿으라 하고 우롱하고 트집을 잡으며 그 큰 사랑을 짓밟아 버린다면 그 죄</b><b>는 용서받지 못합니다</b><b>. </b><b>왜냐하면 죄 중에서 하나님 앞에 이보다 더 큰 죄는 없기 때문입니다</b><b>.  </b><span style="color:#ff0000;"><b>인생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b><b>, </b><b>그것은 새로운 시작입니다</b><b>. </b><b>이 땅의 마지막 순간 필요한 것은 돈이나 권력이 아니라</b><b>, </b><b>영생입니다</b><b>.  </b><b>당신은 영생을 가졌습니까</b><b>? </b><b>생명을 투기하는 자만큼 어리석은 자는 없습니다</b><b>.</b></span></p>]]></description>
			<author><![CDATA[관리자]]></author>
			<pubDate>Wed, 21 Oct 2026 18:35:18 +0000</pubDate>
			<category>전도 편지</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콩을 따라가는 인생]]></title>
			<link><![CDATA[http://100ch.or.kr/wp/?kboard_content_redirect=369]]></link>
			<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justify;"><span style="color:#ff0000;"><b>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b><b>.</b><b>“(</b><b>요</b><b>8: 12)   </b></span><b>한 무리의 돼지떼가 모리꾼을 따라가는데 한 마리도 길을 벗어남이 없이 가더니 마침내 도살장 안으로 거침없이 들어갔습니다</b><b>. </b><b>몰이꾼의 기술이 너무 신기해서 그 이유를 물어 보았습니다</b><b>.   </b><b>“</b><b>간단하지요 뭐</b><b>. </b><b>그 놈들은 콩을 좋아하거든요</b><b>. </b><b>가면서 콩을 한 웅큼씩 길바닥에 뿌려주면 나를 따라 오는 것이 아니라 콩을 따라오는 거지요</b><b>. </b><b>정신없이 콩만 주워 먹고 가다가 제 죽을 곳으로 가는 것도 모르지요</b><b>.”  </b><b>인생이란 너무나 신비에 가득차 있으며</b><b>, </b><b>아직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b><b>. </b><b>또 눈에 보이는 것</b><b>, </b><b>귀에 들리는 것</b><b>, </b><b>피부에 느껴지는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b><b>. </b><b>세상이 신비에 차 있다 함은 인간의 </b><b>, </b><b>인간을 초월한 존재가 있다는 말입니다</b><b>.   </b><b>만약에 인생이 </b><b>70</b><b>년으로 모든 것이 끝나 버린다면 이땅에서 </b><b>1000</b><b>년을 사는 거북이와 학이 만물의 영장인 사람을 보고 얼마나 비웃겠습니까</b><b>? </b><b>인간이 보이고</b><b>, </b><b>들리고</b><b>, </b><b>육으로 느끼는 것에만 매달려 웃고 울고 한다면 무지한 짐승들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b><b>?  </b><b>하늘은 높습니다</b><b>. </b><b>그리고 그곳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b><b>. </b><b>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영원한 <span style="color:#ff0000;">파라다이스 천국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span></b><span style="color:#ff0000;"><b>.  </b><b>혹 당신은 오늘도 눈에 보이는 콩만 쳐다보며 정신없이 따라가도 있지는 않습니까</b><b>?</b></span></p>]]></description>
			<author><![CDATA[관리자]]></author>
			<pubDate>Wed, 21 Oct 2026 18:31:16 +0000</pubDate>
			<category>전도 편지</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천국은 (마13:44-50)]]></title>
			<link><![CDATA[http://100ch.or.kr/wp/?kboard_content_redirect=368]]></link>
			<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justify;"><strong><span style="color:#ff0000;">●</span>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갑니다. 우리의 영원한 본향은 천국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님과 함께 이 천국을 공동으로 상속받도록 되어 있습니다(롬8:17). 우리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는 순간 이 땅에서 영원한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천국이 부분적으로 임한 것입니다. 이 땅에서 천국의 맛을 보며 살아갑니다. 인생은 유한합니다. 하나님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히9:27)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이 세상을 다 떠나야 하는 순간이 옵니다. 함께하던 사람들과 이별하는 날이 옵니다.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실제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별로 투자하는 사람들이 없어 보입니다. 잠깐의 육체적 쾌락이나 유익을 위해서는 눈을 부릅뜨고 달려가면서 영원을 위해서는 눈먼 사람처럼 무지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가끔 이런 사람들을 봅니다. 마치 죽지 않고 이 세상에서 천년만년 살 것처럼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세상이 너무 좋아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적당히 넘기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면서 세상이 전부인줄 알고 사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내일 무슨 일을 당할지, 아니 오늘 한 순간에 무슨 일을 당할지 아무것도 모릅니다. <span style="color:#ff0000;">▲일예&gt;</span> 존 하퍼 목사님이라는 분이 타이타닉 호에 승선했다가 익사했습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이 익사하기 전 얼음조각을 탄 채로 어떤 젊은이에게로 가다갔습니다. “젊은이 당신은 구원 받았습니까?”라고 물었더니 그의 대답은 ‘이니요’였습니다. 곧 바로 목사님은 이 젊은이에게 “주 예수를 믿으시오. 그러면 구원 받습니다.” 그리고는 물속에 잠겼습니다. 말하자면 죽음 이후를 준비하라고 죽어가는 얼음바다 위에서 마지막 말을 남겼습니다. 물론 그 청년은 생존하여 캐나다 헤밀턴의 어느 집회에서 이 사실을 간증했습니다. “그날 나는 3000미터 깊은 바다 위에서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고후5:1) 여기서 장막은 인간의 육체를 상징합니다. 인간은 천막집과 같아서 영구히 존재할 수 없는 약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계가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헤어지고 세월이 흘러갈수록 약해집니다(고후4:16).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때로는 병들어 추해보입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연약함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무너지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 전부인 듯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성도의 삶이 위대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영원을 위해 기꺼이 투자하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행복을 위해 얽어매는 것들을 과감히 벗어 던지는 승리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의 삶에 대한 애착 때문에 천국에 대한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생명보험은 들면서 노후준비는 하면서 사후준비는 참으로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여기에 영원한 삶을 보장하는 완전한 보험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의 어떤 보화와도 바꿀 수 없는 가치 있는 것입니다.바로 우리의 영원한 본향 천국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천국은 마치 무엇과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국의 가치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천국은 무엇과 같을까요?</strong>
<strong> <span style="color:#ff0000;">1&gt;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습니다(마13:44).</span></strong>
<strong> ▪ 본문 44절을 보십시다. (다같이) <span style="color:#ff0000;">▶</span>이제까지 예수님은 천국을 작은 것(겨자씨, 누룩, 가라지)에 비유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와 다음에 나오는 비유를 통해서 천국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상당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말씀하십니다. 천국은 여기서 밭에 감추인 보화로 비유되었는데, 원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그 보화를 우리의 소유로 만들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된 보화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값지고 유용한 모든 것들이 풍성하게 있습니다(골2:3, 고후4:7). 그러므로 우리가 그에게 관심을 갖기만 한다면 그것들은 모두 우리의 소유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복음은 이 보화가 감추어진 밭입니다. 이 보화는 '잠근 동산'(아4:12)에 감추어진 것이 아니고 훤히 트인 밭 속에 감추어졌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광산을 발견해도 올바로 갱도를 파야 그 광석들을 모두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밭에 숨겨진 보화를 발견하고 그 보화가 말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는 것은 깨달았을 때 그 기쁨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장 풍부한 광석이 매장되어 있는 광산들은 종종 가장 메마른 땅에 놓여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경이 다른 책들보다 얼마나 더 좋을까요? 성경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재미없어 보이는 책이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복음입니다. 베스트셀러입니다. 그리스도와 영생을 찾기 위하여 성경을 상고하였던(요5:39) 자들은 성경이라는 밭 속에서 무한한 가치가 있는 보화를 발견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요5:39-40).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신구약 성경은 오실 예수와 오신 예수님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밭에서 이 보화를 발견하고 그 보화의 가치를 올바로 깨닫는 자들은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보화를 사기로 결심합니다. 일례&gt; 실제로 여러분이 남의 땅에서 일을 하다가 금은보화를 발견했을 때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땅을 살만한 넘치는 가치가 있다면 은행 빚을 내서라도 사려고 하지 않을까요? 이는 그 보화가 자기 인생의 전부요 그 보화를 가장 귀한 가치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산 그는 보화를 캐는 데 전념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참된 보화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 의해 유익을 얻고자 하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쟁취하여 그에게서 유익을 발견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 합당한 줄로 믿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이렇게 고백합니다(빌3:7-8). 빌3:7-8절 말씀입니다(찾아읽기).</strong>
<strong> <span style="color:#ff0000;">2&gt; 천국은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습니다(마13:45-46).</span></strong>
<strong> ▪본문 45-46절을 보십시다. (다같이) <span style="color:#ff0000;">▶</span>진주는 고대사회에서 매우 귀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진주는 이것들 가운데 단연 으뜸가는 진귀한 것입니다. 상인은 이 귀한 진주를 발견하기 위하여 계속해서 찾아다녔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찾고 또 찾는 노력을 계속했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장사꾼입니다. 그는 이 값진 진주를 찾아 돌아다닙니다. 그 결과 그는 매우 귀한 진주를 발견한 것입니다. 그는 가서 그 진주를 샀습니다. 그는 그 진주를 얻기 위하여 노력했을 뿐 아니라 그 진주를 결국 샀던 것입니다. 그것은 영적인 부자가 되고자 결심한 사람이 고귀한 것을 얻고자 거래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진리를 찾는 일에 힘쓰는 자에게 하나님의 귀한 은혜가 임할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잠8:17절은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극히 값진 진주 하나와 같은 분이십니다.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고 공중권세 잡은 자의 지배아래 있었습니다(엡2:1-2). 이런 우리가 죄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입니다(요14:6). <span style="color:#ff0000;">▶</span>그러므로 그리스도로부터 구원을 받는 데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어떠해야 할까요? ① 이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기꺼이 모든 것과 손을 끊어야 하며,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하여 모든 것을 떠나야 합니다(마16:24, 마10:39, 눅14:33, 빌3:7-8). ② 또 극히 값진 진주를 찾는 장사처럼 땅의 것을 생각지 말고 위의 것을 찾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골3;1-2). ③ 또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토록 있는 양식, 하늘로부터 내려온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일하는 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요6:27, 35).</strong>
<strong> <span style="color:#ff0000;">3&gt; 천국은 물고기를 모으는 그물과 같습니다(마13:47-50).</span></strong>
<strong> ▪ 본문 47-50절을 보십시다. (다같이) <span style="color:#ff0000;">▶</span>이 그물 비유는 세상 끝 날에 관한 것입니다. 세상은 광대한 바다와 같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바다에서 물고기들을 잡기 위하여 이 바다에 그물을 던지는 것과 같습니다. 이 그물은 예인망처럼 모든 종류의 물고기를 잡습니다. 가시적 교회 안에는 물고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많은 잡동사니와 쓸모없는 것과 해초와 해충들도 섞여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에 대하여 교회 안에 알곡과 쭉정이(곡식과 가라지)가 같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마3:12, 13:24-30, 눅3:17). 이 그물이 가득차서 바닷가로 끌 어올려질 때가옵니다. 그 그물은 지금 채워지고 있습니다. 그 그물이 가득차서 바닷가로 끌어올려질 때 그물 속에 잡힌 물고기 가운데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나누어질 것입니다. 좋은 물고기는 귀중한 것으로서 그릇에 담겨 조심스럽게 다루어지겠지만 나쁜 물고기는 내어 버려질 것입니다. 그물이 바다 속에 있을 동안은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으며 어부들 자신도 그것을 식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부들은 그물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조심스럽게 바닷가로 끌어냅니다. 세상 끝에도 이러할 것입니다(49절). 그릇 안에는 좋은 물고기와 나쁜 물고기가 함께 섞여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고 악인들(가라지, 쭉정이)은 풀무 불에 던져 넣어질 것입니다. 이 때 악인들은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42, 49-50절). <span style="color:#ff0000;">▲</span>천국과 지옥이 분명히 존재할 진대,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 천국이 어떤 곳인지를 알고 지옥이 어떤 곳인지를 안다면 어느 누구도 천국을 소망하게 될 것입니다. 천국의 모습은 계시록 21장에서부터 22장 5절까지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계21:4, 22:1-5절 찾아읽기) <span style="color:#ff0000;">▶</span>무디 선생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후일 신문에 동부 노스필드 출생인 디엘 무디가 죽었다는 기사가 날것이다. 그렇더라도 그 말을 믿지 말라. 그 때에 나는 지금보다 더 생생하게 살 것이다. 그 때는 늙고 병든 육체를 떠나서 영원한 높은 집으로 올라가 있을 것이다. 그 때에 나의 몸은 사망이 침범하지 못하고 죄가 더럽히지 못하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될 것이다. 나의 육신은 1837년 출생하였고 영혼으로 1856년 출생하였다. 육신으로 출생한 나는 죽을 것이다. 그러나 영혼으로 난 나는 영원히 살 것이다.” /하늘나라에는 영생이 있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다시는 사망이 없고”라고 말합니다.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우리가 아무리 성화되고, 주님께 순종하며 산다고 할지라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으로 말미암는 슬픔이 종식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잃는 고통을 경험합니다.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 저편으로 보낸 사람들은 사망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압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보면서 썩을 이 몸이 썩지 않을 몸으로 다시 덧입게 되는 영광스러운 부활의 날을 소망해야 할 이유를 발견하곤 합니다. 그런데 하늘나라에는 죽음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져야 하는 뼈아픈 비극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데려감으로 우리의 가슴에 못을 박았던 죽음의 모든 권세가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미칠 수 없고, 오히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던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 곳에서 영광스런 모습으로 만날 것입니다. 다시 헤어질 두려움 없이, 영원히 거룩하신 주님 앞에서 함께 교제하며 살 하늘나라 가족들로서 말입니다. 죄 많은 이 세상에서 흘린 수많은 눈물자국들과 핏자국들을 남겨 두고, /매순간 주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치렀던 수많은 죄와의 전투들로 말미암아 피투성이가 된 전투복을 벗고,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덧 입혀진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구속의 공로를 힘입어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리신 보혈의 길을 걸어 거룩하신 아버지의 임재 앞으로 나아가고, /그 앞에서 그토록 보고 싶었던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얼싸안고 행복해 할 것입니다. 죄도, 이별도, 아픔과 슬픔도, 눈물도 없는 그 곳이 바로 우리가 가장 사모해야 할 나라, 천국 입니다.</strong>
<strong> <span style="color:#ff0000;">♥ 말씀을 마칩니다. ◼</span>보화가 감추인 밭을 발견하고는 자기 모든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산다는 것과, 값진 진주를 발견한 후 자기 소유를 다 지불하고 그 진주를 산다는 말씀은 곧 천국의 절대가치와 천국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획득할 충분하고도 넘치는 가치가 있는 것임을 교훈해 주는 것입니다. 실로 천국은 너무나도 값진 것이고, 이 세상 것과 대립하는 것이어서 이 세상을 포기하지 않고는 획득할 수 없습니다(마16:24, 마10:39, 빌3:8). 그래서 예수님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11:12)”고 말씀하셨습니다. <span style="color:#ff0000;">◼</span>예수께서 말씀하신 천국 비유 그물 비유는 세상 끝 즉 종말에 관한 비유입니다. 세상 끝 날에 그물에 들어 있는 고기를 선별해서 취하는 것입니다. 세상 끝 날에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은 버리는 것이지요. 버려지는 자는 풀무불에 던져 넣어질 것입니다. 이들은 여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주님 오시는 그날! 끝까지 이긴 자 남은 자되어 거룩한 세마포를 입은 신부의 모습으로 공증에서 혼인잔치에 참가하여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는 복된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strong></p>]]></description>
			<author><![CDATA[관리자]]></author>
			<pubDate>Fri, 16 Oct 2026 22:03:38 +0000</pubDate>
			<category>주일예배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초월적인 하나님의 보호]]></title>
			<link><![CDATA[http://100ch.or.kr/wp/?kboard_content_redirect=367]]></link>
			<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justify;"><span style="color:#ff0000;"><b>[</b><b>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b><b>(</b><b>살전 </b><b>5:23).]   </b></span><b>성령의 위대하고 신비스러운 역사는 우리가 닿을 수 없는 깊은 </b><b>'</b><b>인격적 본성</b><b>'</b><b>의 영역에서 이루어집니다</b><b>. </b><b>시편 </b><b>139</b><b>편에서 시인이 말합니다</b><b>. “</b><b>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b><b>. </b><b>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반드시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 </b><b>.. </b><b>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했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해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b><b>.”   </b><b>당신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의식 세계를 휠씬 초월하는 상상의 세계까지 보호해주시는 것을 민습니까</b><b>? "</b><b>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b><b>"(</b><b>요일</b><b>1:7). </b><b>이 내용은 우리가 의식할 수 있는 죄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b><b>. </b><b>사실 인간이란 존재는 죄로 인해 아주 둔해졌기 때문에 의식하지 못하는 죄가 너무 많습니다</b><b>. </b><b>죄로부터 정결하게 된다는 것은 우리의 영혼 자체만큼이나 깊고 높은 차원입니다</b><b>. </b><b>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심같이 우리가 온전히 빛에 거할 때 죄에 대한 온전한 의식이 가능합니다</b><b>. </b><b>이러한 일이 가능하려면</b><b>, </b><b>예수 그리스도를 채우신 바로 그 성령께서 우리 영혼을 충만하게 채우셔야 합니다</b><b>. </b><b>따라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그때까지 우리는 성령의 거룩하게 하시는 강한 역사 가운데 하나님에 의해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b><b>. </b><b>그래야 우리의 영과 혼과 육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홈 없이 정결하게 유지될 수 있습니다</b><b>.  </b><b>우리는 방심하지 말고 이러</b><b>한 위대하고 엄청난 하나님의 진리 가운데 우리 마음이 사로잡힐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b><b>.  </b><span style="color:#ff0000;"><b>(My Utmost for His Highest, </b><b>주님은 나의 최고봉</b><b>, </b><b>오스왈드 챔버스</b><b>)</b></span></p>]]></description>
			<author><![CDATA[관리자]]></author>
			<pubDate>Sun, 11 Oct 2026 04:53:47 +0000</pubDate>
			<category>믿음의 글</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말씀의 능력과 권세(시19::7-14, 히4:12, 딤후3:16-17)]]></title>
			<link><![CDATA[http://100ch.or.kr/wp/?kboard_content_redirect=366]]></link>
			<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justify;"><strong><span style="color:#ff0000;">♣말씀에는 능력과 권세가 있습니다</span>. 태초에 하나님(성부, 성자, 성령)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창1:1-31). 말씀은 곧 예수님이시고 하나님이십니다(요1:1).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계신 분이십니다(요1:14). 예수님은 말씀으로 성부하나님과 함께 천지창조사역에 동참하셨습니다(창1:26, 요1:1-3). 예수님은 말씀으로 죽은 자를 살리시고(막5:21-43, 눅7:11-17, 요11:1-44),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셨으며(마8:23-27, 막4:35-41, 눅8:22-25), 각종 질병을 고치셨습니다(마4:23-24). 이처럼 말씀에는 능력과 권세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말씀의 능력과 권세가 어떠할까요? 말씀의 능력과 권세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strong>
<strong><span style="color:#ff0000;">1&gt; 말씀의 역할과 능력입니다(히4:12, 딤후3:16-17, 벧전2:2, 시19:1-10).</span></strong>
<strong>▪ 본문 히4:12, 딤후3:16-17, 벧전2:2, 시19:1-10절을 보십시다. <span style="color:#ff0000;">▶</span>말씀의 역할, 말씀의 능력에 대하여 살펴봅시다. 말씀의 능력을 아는 사람은 매주 교회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창1:1-31). 무에서 유를 창조(바라)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신앙은 여기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말씀을 기대감과 경외감으로 대하게 됩니다. 이것은 이론적인 지식이 아닙니다. 정말 깊이 묵상해야 될 말씀입니다. 자연계까지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봅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이 바람과 바다에게 “잠잠하라, 고요하라”고 말씀하실 때 즉시 순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생물과 무생물까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합니다. 천하 만물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만왕의 왕 만주 주라합니다. 하나님이 온 우주의 주인이심을 알려주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인격체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비인격체에게도 그 영향력이 행사됩니다. 이것을 통해 전능하신 하나님을 알려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을 이루시는 데 말씀이 아주 중요한 수단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말씀의 원리로 다스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말씀의 역할과 능력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span style="color:#ff0000;">1) 말씀은 우리를 영적으로 성장하게 합니다.</span> 벧전2:2절은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심어주신 생명으로 우리는 거듭났습니다. 육체적 생명과 마찬가지로 영적 생명도 성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진리를 흡수할 때, 영적 생명은 우리 안에서 성장할 것입니다. 벧전2장 2절의 말씀처럼 말씀의 우유를 먹을 때 우리는 영적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고(요17:17) 영혼의 양식은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진리의 말씀은 우유 그 이상의 것입니다. 영적으로 성장할수록 성경의 ‘굳은 음식’을 더 많이 소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span style="color:#ff0000;"> 2) 또한 성경의 말씀은 삶의 분명한 도덕적 안내자입니다(딤후3:16-17).</span> <span style="color:#ff0000;">3) 또 성경의 말씀은 도덕적 기준을 제시할 뿐 아니라 우리를 자유롭게 해서(요8:32) 그것을 준행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span> 즉 말씀이 우리의 삶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악한 세상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안전한 울타리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시119:11절에서 “내가 주께 범죄 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고 말씀합니다. 갈등 없이는 변화가 일어나기 힘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려고 하면 기존의 악한 습관이 마귀와 한편이 되어 우리를 방해합니다. 이 때 말씀이 필요합니다. <span style="color:#ff0000;">4) 말씀은 마귀의 간계를 분쇄하는 최대의 공격 무기입니다.</span> 엡6장 17절에서는 마귀의 간계를 분쇄하는 최대의 공격무기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의 지식은 우리가 어두움의 권세를 대적할 때 참으로 귀중합니다. <span style="color:#ff0000;">성예&gt;</span> 예수님도 40일 금식하신 후 마귀의 시험을 받았으나 말씀으로(신8:3, 6:16, 6:13) 물리치시고 그 시험을 이기셨습니다(마4:1-11). <span style="color:#ff0000;">5) 또 성경의 말씀은 우리를 지혜롭게 합니다(시119:99-100, 19:7).</span> 수준 높은 말로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생각이 훌륭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시편기자는 말합니다. “내가 주의 증거들을 늘 읊조리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나으며 주의 법도들을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나으니이다”(시119:99-100)“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시19:7) <span style="color:#ff0000;">6) 또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딤후3:16-17, 히4:12).</span> ◾ 딤후3:16-17절 말씀입니다. 우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이 친히 자신을 인쇄된 말씀 속에 나타내고 계십니다. 성경은 선지자들에게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쓰게 하신 것입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존합니다(사40:8. 마5:18, 24:35, 막13:31, 눅21:33) ◾ 히4:12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span style="color:#ff0000;">►</span>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력이 있어 인간의 영혼을 살리는 기능을 하며(시19:7, 행16:31), 불신자들에게는 경고를, 성도들에게는 약속을 효과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span style="color:#ff0000;">►</span>하나님은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의 말씀 역시 생동력 있고 운동력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활력이 있어) 하나님은 일단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시행하십니다(민23:19, 사55:11). <span style="color:#ff0000;">►</span>하나님의 말씀은 가장 예리한 검과 같습니다.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이것은 말씀의 관통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완고한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히며,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는 하나님 안에 살도록 그들의 옛사람을 죽이는 역할을 합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날선 검보다 더 위협적이고 예리한 심판을 제기하는 치명적인 무기입니다.<span style="color:#ff0000;">►</span> 하나님의 말씀의 관통하는 능력은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까지 미친다는 것입니다.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가시적인 것이든 비가시적인 것이든, 육체적인 것이든 영적이고 심리적인 것이든 인간 안에는 말씀의 효력이 관통하지 못할 만큼 딱딱하거나 견고한 것이 없으며, 깊이 감추인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시19:7). <span style="color:#ff0000;">►</span>하나님의 말씀은 심판관이라는 것입니다. ‘마음과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란? 이 말은 우리의 영적 존재의 가장 깊숙한 곳을 살펴서 잠재의식적인 동기까지도 다 드러내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마음속까지 꿰뚫고 들어가 그 마음을 근본적으로 철저하게 파헤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예&gt; ① 초대교회의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3천명, 5천명이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행2:41, 행4:4). ② 어거스틴 교부는 어린이들의 노랫말을 듣고 성경을 펴서 롬13:12-14절을 읽던 중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읽거나 듣던 중 회심하고 돌아온 경우도 있고 마음이나 육신의 병이 치료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span style="color:#ff0000;">▲</span>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의 역할이나 능력은 대단하여 얼마든지 신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말씀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러나 내가 그 말씀에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서 결과는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고 영원합니다(사40:8). 또 하나님은 내가 들었던 말씀으로 심판하십니다. 만약 내가 오늘 말씀 시간에 졸았다고 해서 그 말씀이 사라지는가? 아닙니다. 천지는 없어지나 말씀은 영원합니다. 내가 거부하거나 무시한다고 말씀이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않으십니다. 인간에게 이용당하고 무시당하는 분이 아닙니다. 이것을 알아야 겸손해집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내 믿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의 크기가 아니라 내 믿음의 크기입니다. 내 믿음에 의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행하여지는 것이 결정됩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못하실 일이 없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문제는 나의 믿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네 입을 크게 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은 성취됩니다. 그래서 큰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의심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이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며 삶속에서 실천하며 살아갈 때 능력으로 역사하는 줄로 믿습니다. 이 말씀의 능력과 권세를 아는 사람은 매주 교회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향해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신데, 내가 말씀을 받지 못하면 그 계획이 실행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하면서 우리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부분이 말씀을 받는 것입니다. 말씀은 신앙의 모든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요1:1). 그런데 말씀 받는 것을 소홀히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매주 반복적으로 말씀이 선포되기 때문에 말씀을 가볍게 생각하고, 심지어 말씀 시간에 졸기도 합니다. 이것은 말씀에 대한 경외심과 체험이 없는 사람이나 하는 행동입니다. <span style="color:#ff0000;">►</span>말씀이신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면 말씀을 대하는 자세도 달라집니다. <span style="color:#ff0000;">►</span>말씀을 받을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살전2:13). <span style="color:#ff0000;">►</span> 또 말씀을 받을 때 간절함으로 받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행17:11). <span style="color:#ff0000;">►</span>또 말씀을 받을 때 아멘으로 받아야합니다(고후1:18-20). <span style="color:#ff0000;">▶</span>그렇습니다. 말씀을 받는 성도들의 태도는 어떠해야 할까요? 위에서 말씀드린 바대로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매주 듣는 말씀으로 기대 없이 습관에 젖어 받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오늘 나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으로 믿음으로, 아멘으로 받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런 자세로 말씀을 들을 때, 이 말씀이 믿는 자에게 역사하는 줄로 믿습니다. 예배의 성공이 신앙(인생)의 성공이라고 흔히들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런 지세로 예배를 드릴 때, 첫째는 하나님 앞에 상달되는 예배가 되기 때문이고, 둘째는 말씀을 듣는 중에 내적 감동을 받게 되고 본인과 관련된 문제나 질병이 치료되고 문제해결의 열쇠를 얻게 되기도 합니다. ● 이외에도 말씀과 관련된 성경의 말씀들은 많습니다시119:1-2, 9(). (말씀(말)과 관련된 성경 말씀 발췌: 별지 참조) 지금까지 말씀의 역할과 능력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strong>
<strong><span style="color:#ff0000;">2&gt; 말씀의 권세입니다.</span> </strong>
<strong>하나님의 말씀에 권세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창1:3) 하나님이 말씀만 하셨는데 무(無)에서 유(有)로 빛이 생겨났습니다(창1:3).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 말씀의 권세에 대해 배워야 합니다. 말씀의 권세를 알 때 성경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고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십니다.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십니다(히4:12).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찔리기도 하고 치유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이 내게 파고들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나의 관절과 골수까지 말씀이 들어가기 때문에 치유가 일어납니다. 이를 통해 말씀이 얼마나 강력하고 놀랍고 전능한지를 인식해야 합니다. 이 말씀의 권세 앞에 해결되지 않을 인생의 문제가 무엇이겠습니까?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5:25) 말씀을 들을 때 죽은 자들이 살아납니다. 죽은 나사로에게 예수님께서 “나오라”고 말씀하셨을 때 죽어 나흘째 되서 냄새가 나던 나사로가 살아나오는 역사가 있었습니다(요11:43-44). 이것이 말씀의 능력이요 권세입니다.</strong>
<strong>하나님께서는 천하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고, 인간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인간의 말에도 권세가 있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말하면 안 됩니다. 내가 말한 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민14:2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일예&gt; 그 사례들을 살펴봅시다. 가수들의 노래에 관한 재미있는 통계 자료가 있습니다. <span style="color:#ff0000;">◼</span>가수들은 자신의 히트곡을 평생 3,000번 이상 부른다고 합니다. 노래의 가사도 말이기 때문에 많이 부르면 그대로 현실이 됩니다. 당대 유명 가수들의 노래 중에서 빨리 사망한 가수들의 히트곡을 조사했는데, 놀랍게도 그 가사 대로 죽은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가수 배호는 30세에 신장염으로 0시에 사망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노래 중에 ‘0시의 이별’이라는 곡이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30대에 요절한 가수들의 노래 중 가사가 슬프고 죽음을 부르는 곡들이 많았습니다. ‘사의 찬미’를 부른 가수 윤심덕은 노래 제목처럼 현해탄에서 자살로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가수들이 3천 번이나 노래하는 동안 그 말대로 이루어짐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이 씨앗이기 때문에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span style="color:#ff0000;">◼</span>반대 사례도 있습니다. 송대관 씨는 오랫동안 무명가수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해뜰날’이라는 곡을 발표하고 그 가사 그대로 무명 시절이 끝나고 쨍하고 해뜰날이 돌아왔습니다. 노사연도 ‘만남’이라는 곡 이후 가수 이무송과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윤항기 씨도 ‘나는 행복합니다’라는 노래처럼 행복한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조미미 씨는 ‘바다가 육지라면’이라는 곡을 부르고 나서 현해탄을 건너 재일교포 사업가와 결혼했습니다. 가수들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말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말은 긍정이든 부정이든 꼭 열매를 맺고 끝납니다. 이것이 말의 능력이요 권세인 것입니다. 무서운 것이죠. 저는 말씀의 권세를 깨달은 후 부정적인 정보를 보더라도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고 말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부정적인 정보가 들어오더라도 그 정보를 통해 들어온 부정적인 생각을 내쫓고 축복의 선포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믿음의 선포를 들으시고 내 말대로 일하십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반드시 믿음의 선포와 축복의 말을 해야 합니다. 부모의 믿음의 선포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더욱 하나님은 부모에게 자녀에 대한 축복권을 주셨습니다(창49:1-28). ◾약3:1-12(2-5)절의 말씀을 보십시다. 말에 실수가 없으면 온전한 자라 했습니다(약3:2).말을 하는 혀의 위력에 대하여 ‘말을 제어하는 입에 물 리는 재갈, 큰 배를 움직이는 작은 키, 큰 나무숲은 태우는 작은 불’과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치의 작은 혀가 큰일을 자랑 합니다(약3:5). 더욱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른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약3:7-8).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다고 합니다(잠18:21). 그러므로 말할 때 혀를 잘 사용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들을 신이라 했습니다(요10:34-35).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인 사람의 혀로 말하는 말의 위력, 말의 권세 또한 대단한 것이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능력이 있고 권세가 있고, 이 말씀을 받은 사람을 신이라 할진대(요10:34-35) 인간이 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하고 선포할 때 얼마나 능력 있고 권세 있는 말씀이 되겠습니까? (말씀, 말은 영어로 word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the Word, 말은 word) <span style="color:#ff0000;">★</span>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John1:1) 민14:28절에 “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에 각별히 유의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좋은 말, 적극적이고 창의적이며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슬픈 노래를 부르지 맙시다. 마음에 '기쁨의 노래'를 부릅시다.” 말은 그대로 됩니다. 우리 입에서 부정적인 말이 나오면 모든 상황이 부정적으로 되고, 긍정적인 말이 나오면 상황이 긍정적으로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해야 할 것입니다. 요즘에 한국의 경제적 지위가 국제적으로 많이 나아졌지만 과거에 우리나라가 못 산 가장 큰 이유는 말 때문이었다고 믿습니다. 얼마나 부정적인 말이 많았는가요? 자녀에게 실망했다고 자녀에게 "빌어먹을 놈"이라고 하면 자녀는 절대 "베푸는 사람"이 되지 않고 "빌어먹을 놈"만 될 것입니다. 또 “염병할 놈”이라고 하면 “병치레 하는 연약한 병자”처럼 될 것입니다. 그리고 흔히 내뱉는 "죽겠다!"는 말도 문제입니다. "배고파 죽겠다, 귀찮아 죽겠다."고 하면 죽을 일만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워도 "살만 하다!, 살겠다."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일예&gt; 나와 집사람은 이 말씀의 능력과 권세를 알기에 말에 각별히 주의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집사람이 외손녀 설에게 힘들 때마다 ‘무엇 때문에 살겠다.’고 수시로 했더니 한 번은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할머니, 왜 자꾸 살겠다고 해, 죽겠다는 말이지!!’ 손녀가 생각하기는 분명히 어렵고 힘들어서 하는 말인데 앞뒤가 맞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다가 물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이 손녀의 말을 패러디해서 집사람과 이야기 할 때 무엇 때문에 힘들어도 살겠다고 말 할 때 이어서 제가 장단을 맞춥니다. ‘죽겠다는 말이지,!’ 그리고는 웃곤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속담에도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살아있는 씨는 분명히 싹과 입이 나고 열매가 맺힙니다. <span style="color:#ff0000;">◼</span>이어령 교수는 우리나라가 그래도 이만큼 잘 살게 된 이유가 코흘리개 아이들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 아이들이 코를 흘리니까 어른들이 말하기를 "얘야! 흥&lt;興&gt;해라!" 그 말을 많이 해서 우리나라가 흥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유머 속에 메시지가 있는 글입니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보고 "흥하라!"고 하면 흥하게 되고, "망할 놈!" 하면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옛날 가수 박재란 여사의 말에 의하면 "가수는 대개 자기가 가장 히트한 곡대로 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가수가 한 곡을 히트곡으로 만들려면 그 곡을 대개 3천에서 오천 번은 불러야 하는데, 그렇게 부르다 보면 자기 암시에 빠져 그 인생도 그렇게 될 확률이 크다는 것입니다. 말씀의 능력, 말의 위력이 이만큼 크다는 것이지요. <span style="color:#ff0000;">♥ 말씀을 마칩니다.</span>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과 권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것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인간은 바다의 물고기 하늘의 새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릴 권을 받았습니다(창1:26-28).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을 신이라 했습니다(요10:34-35).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 보다 더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도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합니다(히4:12). 또 말씀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입니다(딤후3:16-17). 또 이 말씀은 영혼을 소성케 하고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순종할 때 마음을 기쁘게 하고 눈을 밝게 합니다. 이 말씀은 영원까지 이릅니다(시19:7-10). 예수님은 바로 말씀이시며,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요1:1, 14). 예수님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하셔서 창조사역에 동참하셨으며, 육신의 모습을 입고 오신 후 죽은 자를 살리시며 바람과 파도를 말씀으로 다스리셨고 각종 병든 자들을 치료하셨습니다. 이렇게 이 말씀은 능력이 있고 권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의 혀도 말의 권세가 있습니다. 이 능력이 있고 권세 있는 말씀을 인간의 혀로 선포하고 말할 때 능력과 권세가 나타난 줄로 믿습니다. 이 능력과 권세로 부모는 자녀에 대해 축복하고(창49장), 주의 종은 성도에 대해 축복할 때(민6:24-26) 이 복이 이들에게 임하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혀를 유용하게 잘 사용하여 긍정적 적극적 창의적인 말들을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또 이 말씀의 능력과 권세를 믿고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멘으로 들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살전2:13, 행17:11, 고후1:18-20). </strong></p>]]></description>
			<author><![CDATA[관리자]]></author>
			<pubDate>Sun, 11 Oct 2026 04:50:51 +0000</pubDate>
			<category>주일예배설교</category>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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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나의 희생제물은 살아있습니까?]]></title>
			<link><![CDATA[http://100ch.or.kr/wp/?kboard_content_redirect=364]]></link>
			<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justify;"><span style="color:#ff0000;"><b>[</b><b>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제단을 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b><b>(</b><b>창</b></span><b><span style="color:#ff0000;">22:9)]</span>   </b><b>하나님께서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죽음의 희생이라고 생각합니까</b><b>? </b><b>그렇지 않습니다</b><b>. </b><b>하나님은 죽음을 </b><b>‘</b><b>통한</b><b>' </b><b>희생으로써 우리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들기 원하십니다</b><b>. </b><b>곧 우리의 </b><b>’</b><b>삶</b><b>'</b><b>이 희생제물이 되는 것입니다</b><b>. "</b><b>제가 주와 함께 죽는 자리까지 가겠나이다</b><b>"</b><b>가 아니라 </b><b>"</b><b>제가 주님과 함께 죽어 제 삶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희생제물이 되게 하겠나이다</b><b>"</b><b>라는 것입니다</b><b>. </b><b>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b><b>. </b><b>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러한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셨습니다</b><b>. </b><b>이와 같은 훈련이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진행됩니다</b><b>. </b><b>주님은 어느 곳어서도 모든 것을 버리기 위해 포기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b><b>. </b><b>가장 가치 있는 단 한 가지</b><b>, </b><b>곧 주님과 함께하는 삶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라는 것입니다</b><b>. </b><b>이는 이러한 삶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b><b>. </b><b>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일체가 됨으로써 다른 모든 것들을 포기하면</b><b>, </b><b>우리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우리의 삶을 주님께 산 제사로 드리게 됩니다</b><b>. </b><b>죽음을 위해 당신의 삶을 주께 드리는 것은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b><b>. </b><b>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당신의 </b><b>'</b><b>산 제사</b><b>'</b><b>입니다</b><b>. </b><b>예수님을 통해 구원받고 거룩하게 된 당신의 모든 능</b><b>력을 하나님께서 사용하게 하십시오</b><b>. </b><b>이러한 제사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산 제사입니다</b><b>.      </b><span style="color:#ff0000;"><b>(My Utmost for His Highest, </b><b>주님은 나의 최고봉</b><b>, </b><b>오스왈드 챔버스</b><b>)</b></span></p>]]></description>
			<author><![CDATA[관리자]]></author>
			<pubDate>Wed, 30 Sep 2026 21:01:22 +0000</pubDate>
			<category>믿음의 글</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예수님과 친밀하게 지내십시오.]]></title>
			<link><![CDATA[http://100ch.or.kr/wp/?kboard_content_redirect=363]]></link>
			<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justify;"><span style="color:#ff0000;"><b>[</b><b>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합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b><b>? (</b><b>요 </b><b>14:9)]  </b></span><b>이 말씀은 상대방을 꾸짖거나 놀라게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b><b>. </b><b>예수님께서 빌립을 이끌고 계신 것입니다</b><b>. </b><b>친숙해지기가 가장 어려운 분이 있다면 예수님일 것입니다</b><b>. </b><b>성령님이 오시던 오순절 전까지도 제자들은 예수님이 단지 악령을 이기는 힘을 주시고 부흥을 가져다 주시는 분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b><b>(</b><b>눅</b><b>10:18-20). </b><b>이 정도만 하더라도 꽤 친밀한 관계입니다</b><b>. </b><b>그러나 휠씬 더 친밀한 관계가 있었습니다</b><b>. </b><b>성령께서 오심으로 성령안에서 나누게 되는 예수님과의 엄청난 친밀합입니다</b><b>.  </b><b>“</b><b>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하리라</b><b>"(</b><b>요</b><b>15:15). </b><b>진정한 친구 관계는 이 땅에 흔치 않습니다</b><b>. </b><b>진정한 우정이란 생각과 마음과 영이 같아지는 것을 의미합니다</b><b>. </b><b>제자의 삶이란 예수 그리스도와 가장 친밀한 관계로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b><b>. </b><b>주님으로부터 축복도 받고 주의 말씀도 머리로 알지만 정말로 그분을 알고 있습니까</b><b>?  </b><b>예수님께서 </b><b>"</b><b>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b><b>"(</b><b>요</b><b>16:7)</b><b>고 말씀하셨습니다</b><b>. </b><b>그분은 성령을 통한 관계 속에서 제자들을 이끌기를 원하셨습니다</b><b>. </b><b>예수님의 기쁨은 그분의 제자가 예수님께로 한걸음씩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것입니다</b><b>. </b><b>열매 맺는 삶이란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관계가 외부로부터 나타나는 현상입니다</b><b>(</b><b>요</b><b>15:1-4). </b><b>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한 관계를 맺으면 우리는 결코 외롭지 않습니다</b><b>. </b><b>또한 누군가로부터 동정을 받을 필요도 없습니다</b><b>. </b><b>비통한 마음이 전혀 없이 언제나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b><b>. </b><b>또한 예수님과 긴밀한 관계를 갖는 사람은 자신의 이미지를 남기는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남깁니다</b><b>. </b><b>그 이유는 모든 인간의 가장 깊은 곳은 오직 예수님만이 만족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b><b>. </b><b>예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에게 주님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평강을 주십니다</b><b>.     </b><span style="color:#ff0000;"><b>(My Utmost for His Highest, </b><b>주님은 나의 최고봉</b><b>, </b><b>오스왈드 챔버스</b><b>)</b></span></p>]]></description>
			<author><![CDATA[관리자]]></author>
			<pubDate>Wed, 30 Sep 2026 20:58:56 +0000</pubDate>
			<category>믿음의 글</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치외법권]]></title>
			<link><![CDATA[http://100ch.or.kr/wp/?kboard_content_redirect=362]]></link>
			<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justify;"><span style="color:#ff0000;"><b>“</b> <b>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b><b>”(</b><b>롬</b><b>8:1-2)   </b></span><b>한 사람이 그 나라 법의 지배를 받지 않는 특권을 치외법권이라 하는데</b><b>, </b><b>구원은 마치 이 치외법권과 같습니다</b><b>. </b><b>이 땅은 영적으로 마귀의 법</b><b>(</b><b>죄와 사망의 법</b><b>)</b><b>의 지배를 받고 있는 바</b><b>, </b><b>이 법 아래 사는 모든 사람은 죽음과 동시에 지옥으로 떨어집니다</b><b>. </b><b>그러나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b><b>‘</b><b>특별한 장소</b><b>’</b><b>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이 마귀의 법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b><b>. </b><b>노아시대 때는 그 특별한 장소가 방주였습니다</b><b>. </b><b>모세시대 출애굽 할 때는 그 특별한 장소가 어린양의 피가 뿌려진 집이었습니다</b><b>. </b><b>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 때는 그 특별한 장소가 도피성이었습니다</b><b>. </b><b>다 멸망했는데</b><b>, </b><b>이 특별한 장소 안에 있었던 사람들은 아무런 조건 없이 모두가 다 안전했습니다</b><b>. </b><b>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다 복음의 그림자입니다</b><b>. </b><b>영원한 치외법권의 장소가 있습니다</b><b>. </b><b>바로 그리스도 안입니다</b><b>. </b><b>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마귀의 법이 미치지 못하고 영원히 안전합니다</b><b>. </b><b>이 넓은 땅에서 그냥 흩어져 살고 있는 사람들은 다 멸망하는데</b><b>, </b><b>특별히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바로 그리스도 안입니다</b><b>. </b><b>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유일한 은혜의 장소입니다</b><b>. </b><span style="color:#ff0000;"><b>누구든지 주 예수를 믿으면 그게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b><b>. </b><b>당신은 지금 어느 곳에 서 있습니까</b><b>? </b><b>모든 사람이 가고 있는 멸망의 장소입니까</b><b>? </b><b>아니면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특별한 치외법권의 장소입니까</b><b>?  </b><b>결과는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집니다</b><b>.</b></span></p>
<span style="color:#ff0000;"><b> </b></span>]]></description>
			<author><![CDATA[관리자]]></author>
			<pubDate>Wed, 30 Sep 2026 19:59:35 +0000</pubDate>
			<category>전도 편지</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천주교와 기독교]]></title>
			<link><![CDATA[http://100ch.or.kr/wp/?kboard_content_redirect=361]]></link>
			<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justify;"><span style="color:#ff0000;"><b>“</b> <b>나는 여호와라</b><b>. </b><b>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나니 나밖에 신이 없느니라</b><b>”[</b><b>시편</b></span><b><span style="color:#ff0000;">45:5] </span>  </b><b>한국과 일본은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 나라이듯이</b><b>, </b><b>천주교와 기독교는 비슷한 것 같지만 사실은 전혀 다릅니다</b><b>. </b><b>천주교의 기본 교리는 기독교와는 정반대입니다</b><b>. </b><b>천주교의 주요 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b><b>. </b><span style="color:#ff0000;"><b>①</b><b>연옥설</b><b>: </b></span><b>사람이 죽으면 천국과 지옥의 중간인 연옥에 간다고 주장합니다</b><b>. </b><b>그렇지 않습니다</b><b>. </b><b>예수 믿고 죄 용서함 받고 죽으면 바로 천국가고</b><b>, </b><b>예수를 믿지 않으면 죄 때문에 바로 지옥갑니다</b><b>. </b><span style="color:#ff0000;"><b>②</b><b>교황무오설</b></span><b><span style="color:#ff0000;">:</span> </b><b>교황은 죄 없는 무오한 존재라고 주장합니다</b><b>. </b><b>그렇지 않습니다</b><b>. </b><b>이 땅에 인간의 탈을 쓰고 죄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b><b>. </b><span style="color:#ff0000;"><b>③</b><b>고해성사</b><b>: </b></span><b>신부에게 죄를 고해서 용서 받는다고 생각합니다</b><b>. </b><b>인간은 아무리 위대해도 다른 인간의 죄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b><b>. </b><b>오직 하나님만이 인간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습니다</b><b>. </b><span style="color:#ff0000;"><b>④</b><b>우상숭배에 빠져 있습니다</b></span><b><span style="color:#ff0000;">:</span> </b><b>성모 마리아를 상을 만들어 섬기고</b><b>, </b><b>제사를 드리고</b><b>, </b><b>죽은 성인을 숭배하고 있습니다</b><b>. </b><b>그러나 기독교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만을 경배합니다</b><b>. </b><span style="color:#ff0000;"><b>⑤</b><b>이신칭의</b><b>(</b><b>以信稱義</b><b>):</b></span><b>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음을 부정합니다</b><b>. </b><b>천주교의 구원은 행위와 성례에 비중을 두고 있고</b><b>, </b><b>만인구원론</b><b>(</b><b>모든 인간을 결국 다 구원받는다</b><b>)</b><b>으로 귀결됩니다</b><b>. </b><b>그러나 기독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용서받은 자만이 구원받습니다</b><b>. </b><span style="color:#ff0000;"><b>⑥</b><b>성경의 권위를 부정합니다 </b><b>:</b></span><b>성경의 권위보다 천주교 성직자와 천주교회의 권위를 더 높이고 있으며 또 저들의 성경은 </b><b>7</b><b>권의 가경</b><b>(</b><b>외경</b><b>)</b><b>이 포함되어 있고 유전과 전통도 함께 믿고 있습니다</b><b>. </b><b>그것은 기독교가 믿는 정경과는 다릅니다</b><b>.  </b><span style="color:#ff0000;"><b>기독교는 수많은 종교 중 오직 유일한 생명의 종교입니다</b><b>. </b><b>다른 모든 종교에는 구원이 없습니다</b><b>. </b><b>구원은 하나님의 독생자</b><b>, </b><b>날 위해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믿고 고백하는 기독교만의 양보할 수 없는 전유물입니다</b><b>.  </b><b>“</b><b>예수 믿으세요</b><b>”</b></span></p>]]></description>
			<author><![CDATA[관리자]]></author>
			<pubDate>Wed, 30 Sep 2026 19:56:16 +0000</pubDate>
			<category>전도 편지</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천국과 지옥은 누가 가는가?]]></title>
			<link><![CDATA[http://100ch.or.kr/wp/?kboard_content_redirect=360]]></link>
			<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justify;"><span style="color:#ff0000;"><b>“</b> <b>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b><b>주예수를</b> <b>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b><b>”(</b><b>엡</b></span><b><span style="color:#ff0000;">2:8)</span>  </b><b>착하게 살아야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b><b>. </b><b>구제를 많이 해야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b><b>.  </b><b>돈이 많아야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b><b>.  </b><b>공부를 많이 해야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b><b>. </b><b>자식 농사를 잘 지어야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b><b>.  </b><b>천국은 죄 없는 자가 가는 곳입니다</b><b>. </b><b>그렇다고 죄 짓지 않은 자가 가는 곳이 아닙니다</b><b>. </b><b>죄 짓지 않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습니까</b><b>? </b><b>오직 이 죄를 용서함 받은 자가 가는 곳이 천국입니다</b><b>. </b><b>이 죄를 용서함 받는 길은 오직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b><b>. </b><b>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를 용서받습니다</b><b>. </b><b>착하게 못 살아서 지옥 가는 것이 아닙니다</b><b>. </b><b>공부를 못해서 지옥 가는 것이 아닙니다</b><b>.  </b><b>도둑질</b><b>, </b><b>강도질을 해서 지옥 가는 것이 아닙니다</b><b>. </b><b>사람을 죽였다고 지옥 가는 것이 아닙니다</b><b>. </b><span style="color:#ff0000;"><b>이 세상의 모든 죄악은 예수께서 이미 십자가 위에서 처리하셨습니다</b><b>. </b><b>이제 천상천하 단 하나의 죄는 주 예수를 거절하는 것입니다</b><b>.  </b><b>천국 가는 조건은 단 하나 예수 믿고 죄 용서함 받는 길이고 </b><b>, </b><b>지옥 가는 조건도 단 하나 예수 안 믿고 죄를 그냥 방치해 두는 것입니다</b><b>.  </b><b>당신은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b><b>?</b></span></p>]]></description>
			<author><![CDATA[관리자]]></author>
			<pubDate>Wed, 30 Sep 2026 19:52:00 +0000</pubDate>
			<category>전도 편지</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참 생명의 길]]></title>
			<link><![CDATA[http://100ch.or.kr/wp/?kboard_content_redirect=359]]></link>
			<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justify;"><span style="color:#ff0000;"><b>“</b><b>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b><b>”</b><b>(</b><b>사</b></span><b><span style="color:#ff0000;">1:18)</span>  </b><b>오징어를 잡으려면 울릉도로 가야 합니다</b><b>. </b><b>울릉도 근해에는 싱싱하고 펄떡펄떡 뛰는 오징어가 줄줄이 줄줄이 올라오기 때문입니다</b><b>. </b><b>산삼을 캐려면 심심산골로 가야합니다</b><b>. </b><b>마무도 밟아보지 않는 깊은 숲속 그곳에 오직 외롭게 가만히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b><b>.  </b><b>몸의 때를 씻으려면 목욕탕으로 가야합니다</b><b>. </b><b>뜨거운 물 속에 오랫동안 몸을 담가야만 깨끗한 피부로 씻음 받기 때문입니다</b><b>. </b><b>인생이 구원을 받으려면 주 예수께로 달려가야 합니다</b><b>. </b><b>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그분의 피가 아니고서는 천하 인간에 죄 용서함을 받을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b><b>. </b><b>예수 그리스도 그분은</b><b>- .</b><b>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기 위해 죽으셨습니다</b><b>. </b><b>우리의 죄 값을 다 치르시고 </b><b>3</b><b>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b><b>. </b><b>그분은 나같이 못난 이를 지극히 사랑하사 오늘도 두 팔을 활짝 벌리고 기다리고 계십니다</b><b>. </b><b>그분의 품에 안기는 자는 새로운 영적 생명을 얻습니다</b><b>. </b><b>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습니다</b><b>. </b><b>지체하지 마시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십시오</b><b>. </b><span style="color:#ff0000;"><b>참 생명의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이 길밖에 없습니다</b><b>. </b><b>사람은 팔자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b><b>. </b><b>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오직 준비하며 사는 것입니다</b><b>. </b><b>기회는 지금뿐인지도 모릅니다</b><b>. </b><b>이 기회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b><b>?</b></span></p>]]></description>
			<author><![CDATA[관리자]]></author>
			<pubDate>Wed, 30 Sep 2026 19:47:58 +0000</pubDate>
			<category>전도 편지</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본능]]></title>
			<link><![CDATA[http://100ch.or.kr/wp/?kboard_content_redirect=358]]></link>
			<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justify;"><span style="color:#ff0000;"><b>“</b><b>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b><b>”(</b><b>전</b></span><b><span style="color:#ff0000;">3:11)</span>  </b><b>사람은 누구에게나 본능이 있습니다</b><b>. </b><b>본능이란 내 몸과 마음속에서 나도 모르게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반응을 말합니다</b><b>. </b><b>본능이 있다는 말은</b><b>, </b><b>그것을 충족시켜 줄 대상이 존재함을 의미합니다</b><b>. </b><b>대상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본능이 일어나는 것입니다</b><b>. </b><b>인간에게는 먹고 마시고 싶은 본능이 있습니다</b><b>. </b><b>그 말은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이 땅에 존재한다는 말입니다</b><b>. </b><b>이성의 본능도 있습니다</b><b>. </b><b>그것은 이 땅에 이성이 존재하고 있다는 말입니다</b><b>. </b><b>또 인간에게는 영원히 살고 싶은 본능이 있습니다</b><b>. </b><b>그것은 인간의 마지막 본능이자 궁극적 본능입니다</b><b>. </b><b>그 말은 인간에게는 죽음 너머 영원의 세계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는 말입니다</b><b>. </b><b>그렇습니다</b><b>. </b><b>인간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b><b>, </b><b>영원히 사는 존재로 만들어 졌습니다</b><b>. </b><b>그래서 누구에게나 영원의 본능이 있습니다</b><b>. </b><b>그 영원히 사는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b><b>. </b><b>천국에만 가면 누구나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b><b>. </b><b>그러나 천국은 내가 무조건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b><b>. </b><b>주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b><b>. </b><b>주 예수를 나의 구원자로 믿고 고백하고 그의 피로 죄 용서함 받은 자만이 천국에 가서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b><b>. </b><b>당신에게도 어느 순간 갑자기 영원히 살고 싶다는 마음이 나도 모르게 불쑥 일어납니까</b><b>? </b><span style="color:#ff0000;"><b>그렇다면 그 본능을 채우기 위해서 조심스레 그 길을 찾아야 합니다</b><b>. </b><b>하나님은 당신에게 영원한 천국을 선물로 주시기 위해 독생자를 주셨습니다</b><b>. </b><b>예수 믿으세요 </b><b>! </b><b>그래서 인생의 마지막 본능을 채우십시오</b><b>.</b></span></p>]]></description>
			<author><![CDATA[관리자]]></author>
			<pubDate>Wed, 30 Sep 2026 19:44:25 +0000</pubDate>
			<category>전도 편지</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복음을 아시나요?]]></title>
			<link><![CDATA[http://100ch.or.kr/wp/?kboard_content_redirect=357]]></link>
			<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justify;"><span style="color:#ff0000;"><b>“</b><b>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b><b>피</b><b>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b><b>생명</b><b>이 없느니라</b> <b>”(</b><b>요</b></span><b><span style="color:#ff0000;">6:53)</span>  </b><b>복음</b><b>(</b><b>福音</b><b>)</b><b>이란 복 복</b><b>(</b><b>福</b><b>)</b><b>자 소리 음</b><b>(</b><b>音</b><b>)</b><b>자</b><b>, </b><b>복된 소리 즉 기쁜 소식이란 말입니다</b><b>.  </b><b>인간은 죄로 인하여 완전히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이며 죽음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b><b>.  </b><b>하나님은 이러한 상황에 처한 인간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구원의 길을 제시하시려고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b><b>.  </b><b>복음은 </b><b>‘</b><b>구원의 길</b><b>’</b><b>이란 것을 다시 한 번 음미해야 합니다</b><b>. </b><b>복음은 하나님이 차려 놓으신 만찬이지</b><b>, </b><b>그 만찬이 사람들의 입에까지 그냥 들어오지 않습니다</b><b>. </b><b>차려 놓은 것입니다</b><b>. </b><b>멍청하게 있어도 그냥 입에까지 하나님이 넣어주는 것은 기계적이지 복음은 아닙니다</b><b>. </b><b>그러므로 내 의지로 거기 가서 내 손으로 집어 먹어야 비로소 생명의 복음이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b><b>. </b><b>오늘날 많은 사람이 복음을 알기는 알고 듣기는 많이 들었는데 그냥 막연하게 쳐다보고만 있습니다</b><b>. </b><b>그것은 그림의 떡입니다</b><b>. </b><b>전능하신 하나님도 어쩔 수 없습니다</b><b>. </b><b>이제 철저히 멸망한 인간은 하나님의 구원의 만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b><b>. </b><b>선물은 가진 자에게만 선물이 되듯이</b><b>, </b><b>하나님의 구원의 선물도 참여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b><b>.  </b><span style="color:#ff0000;"><b>복음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것이며 완성품입니다</b><b>. </b><b>여기에 더해서도 안 되고 빼서도 안 됩니다</b><b>. </b><b>그냥 선물로 받으면 </b><b>(</b><b>예수만 믿으면</b><b>) </b><b>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b><b>.  </b><b>당신은 하나님이 제시하신 복음의 만찬에 참여하고 싶지 않습니까</b><b>?</b></span></p>]]></description>
			<author><![CDATA[관리자]]></author>
			<pubDate>Wed, 30 Sep 2026 19:40:30 +0000</pubDate>
			<category>전도 편지</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번개와 천둥]]></title>
			<link><![CDATA[http://100ch.or.kr/wp/?kboard_content_redirect=356]]></link>
			<description><![CDATA[<div class="kboard-document-top">
<div class="left"></div>
<div class="right">
<div class="kboard-vote">
<div class="kboard-document-like-count" style="text-align:justify;"><span style="color:#ff0000;"><b>“</b><b>죄의 삯은 사망이요</b><b>......”(</b><b>롬</b></span><b><span style="color:#ff0000;">6::23) </span>  </b><b>번개와 천둥은 거의 동시적 현상입니다</b><b>. </b><b>번개가 먼저 치면 반드시 그 뒤에 꼬리를 물고 천둥이 울려 퍼지게 됩니다</b><b>. </b><b>번개는 쳤는데 천둥이 울지 않는 경우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b><b>. </b><b>이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적인 만남입니다</b><b>.  </b><b>죄와 죽음도 그렇습니다</b><b>. </b><b>죄에는 반드시 꼬리를 물고 죽음이 따라옵니다</b><b>. </b><b>죄는 발생했는데 죽음이 따라오지 않는 경우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b><b>. </b><b>죄와 죽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적인 친구입니다</b><b>. </b><b>죽음이란 소멸이 아닙니다</b><b>. </b><b>동물은 그 존재 자체가 소멸되지만</b><b>, </b><b>인간은 불멸의 영혼이 있기에</b><b>, </b><b>육이 쓰러지면 그 영혼은 천국과 지옥 두 곳으로 갈라집니다</b><b>. </b><b>이 때 지옥 가서 영원히 불 못의 뜨거움 속에서 고통 받으며 사는 것을 죽음이라 합니다</b><b>. </b><b>죄 다음에는 바로 이 죽음의 형벌이 치고 들어옵니다</b><b>.  </b><b>그러나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b><b>, </b><b>이 땅에 오셔서 죄인 된 인간을 죽음의 형벌에서 건지셨습니다</b><b>. </b><b>당신이 친히 인간의 죄를 다 뒤집어쓰시고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그 일을 이루셨습니다</b><b>. </b><b>이제 죄인 된 인간은 날 위해 대신 죽어 주신 그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붙잡아야 합니다</b><b>. </b><b>번개 다음에 천둥은 막을 수 없지만</b><b>, </b><b>죄 다음에 죽음은 이렇게 막을 수 있습니다</b><b>. </b><span style="color:#ff0000;"><b>당신의 인생 뒤에는 죽음</b><b>(</b><b>지옥</b><b>)</b><b>이 가만히 엎드리고 당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b><b>. </b><b>이 문제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b><b>?</b></span></div>
</div>
</div>
</div>]]></description>
			<author><![CDATA[관리자]]></author>
			<pubDate>Wed, 30 Sep 2026 19:35:51 +0000</pubDate>
			<category>전도 편지</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눅5:1-11)]]></title>
			<link><![CDATA[http://100ch.or.kr/wp/?kboard_content_redirect=354]]></link>
			<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justify;"><strong><span style="color:#ff0000;">◆</span> 오늘은 눅5장(1-11) 본문을 중심으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듣겠습니다.  <span style="color:#ff0000;">▲</span> 오늘 말씀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실 때, 무리들이 몰려와서 말씀을 듣습니다(눅4:44). 이 후 예수님은 장소를 바꾸어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배 두 척 중 시몬의 배에 오르시어 육지에서 거리를 떼시고 이 배를 강단 삼아 무리들에게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span style="color:#ff0000;">※</span> 게네사렛 호수는 여러 명칭으로 불리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긴네렛, 포로 귀환기에는 게네사렛 호수, 신약시대는 갈릴리 바다,디베랴 바다) <span style="color:#ff0000;">▶</span>한편 베드로 일행이 밤이 새도록 고기를 잡으려 그물을 내렸으나 고기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그물을 거두어 씻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시몬 베드로의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기를 마친 후에 시몬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십니다(4).  이 때 시몬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5절의 말씀입니다. <span style="color:#ff0000;">(다 같이 읽겠습니다.) </span>이 말씀처럼 이들은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고 수고하였지만 잡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 그물을 거두어 씻고 있었던 것입니다. 밤샘작업이었기에 육신이 피곤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졌더니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질 정도입니다(6). 이에 다른 배에 도움을 청하였더니 그 배도 물에 잠기게 될 정도로 가득 채워졌습니다(7). 만선이 된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기적을 보고 예수님의 무릎 아래 엎드려 자기가 죄인임을 고백합니다(8). 왜냐하면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자들과, 시몬의 동업자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기 때문입니다(9-10). 그리고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배를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 제자의 길을 갑니다. 오늘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일까요?</strong>
<strong><span style="color:#ff0000;">1&gt;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눅5:4-7).</span> </strong>
<strong>▪ 본문 4-7절을 보십시다. <span style="color:#ff0000;">▶</span>예수님이 밤새껏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해 들어왔던 이들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을 때 이 명령은 그렇게 달갑지 않게 들렸을 것입니다. 그물을 거두어 씻고 있었고 밤새 수고한 때문에 몸도 많이 지쳐 있었고 바다 한 가운데로 가려면 힘도 들기 때문일 것입니다. 더욱 갈릴리 호수에서 잔뼈가 굵은 베드로는 경험적으로 어두운 밤에 언덕 가까이 있는 얕은 곳에서 많이 잡히고 그들이 가진 그물로는 대낮에 깊은 바다에서 고기를 잡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갈릴리 호수에서의 고기잡이에 관한한 그 누구도 베드로 일행을 따라올 자가 없었을 것입니다. </strong><strong>갈릴리 수산 대학 출신 베드로의 어업지식과 경험을 따를 것인가 고기잡이에는 문외한인 젊은 랍비 예수님의 명령을 따를 것인가는 지식과 경험의 영역을 넘어 믿음의 영역에 속한 줄로 믿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베드로 일행은 그들의 지식과 경험에도 불구하고, 고기잡이에는 생소한 목수 출신의 젊은 랍비의 말에 순종하기로 했습니다(5). 시몬이 예수님의 명령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span style="color:#ff0000;">▶</span>5절의 말씀입니다.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예수님을 선생님이라 부릅니다. 선생님은 다른 사람보다 신분이 높은 감독자를 가리키는데 사용됩니다. 여기서는 특히 그리스도의 권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본문 앞의 4장에서 예수님은 그의 말씀의 권위와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시몬의 장모의 열병을 고치시고 온갖 병자들에 손을 얹어 질병을 고치십니다(눅4:31-41). 시몬 베드로를 비롯한 일행들은 바로 이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와 능력을 친히 현장에서 보고 들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시몬 베드로는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고 합니다. 이 말의 뜻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내 지식과 경험과 상식에는 맞지 않지만 말씀(권위와 능력)을 믿고 순종하겠습니다.’ 라는 뜻입니다. </strong><strong>믿음은 ‘파스칼’의 말대로 이성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며 주님의 말씀에 모든 것을 다 거는 것입니다. </strong><strong>믿음은 순종하는 것이며 순종은 기적을 낳습니다. <span style="color:#ff0000;">▶</span>순종의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6-7절의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바로 만선의 기적이요 축복입니다. </strong><strong>그들의 지식과 경험상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빈배가 만선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자연의 현상과 지식과 경험을 초월한 하나님의 전능하신 권능으로 역사하신 결과입니다. 주님께서 초자연적으로 역사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고기떼를 깊은 물로 몰아 그물에 들어가도록 그의 권위와 능력으로 명하신 결과입니다. <span style="color:#ff0000;">▶</span>이외에도 성경 여러 곳에서 예수님의 권위와 권능, 전능하심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strong><strong>예수님은 바람과 바다를 그의 권세로 명하사 잔잔케 하신 분이십니다(마8:23-27, 막4:35-41, 눅8:22-25). </strong><strong>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신 분이십니다(마28:18). 예수님은 그 영광과 권능이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십니다(빌2:6). 예수 이름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시며(빌2:9),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케 하신 분이십니다(빌2:10-11). 창세 때 예수님은 말씀으로 성부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요1:1). 창세 때 성자 예수님은 성부하나님과 함께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창1:1, 요1:1-3). <span style="color:#ff0000;">▶</span>예수님은 이처럼 지식과 경험과 상식을 초월하여 초자연적인 기적을 통해서 그분이 바로 전지전능하시며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전능하신 주님 앞에 선 연약한 피조물인 우리는 어떤 자세로 그분을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strong>
<strong><span style="color:#ff0000;">2&gt;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인간의 지식과 경험, 상식을 내려놓고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눅5:5-6).</span></strong>
<strong>▪ 본문 5-6절을 보십시다.  <span style="color:#ff0000;">▶</span>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예수님의 신적 능력을 체험한 시몬 베드로는 그의 고기잡이에 대한 경험과 지식과 상식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로 하였습니다.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 순종의 결과는 만선의 축복이었습니다. 이는 또 한편으로는 인간의 모든 수고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인생들에게 주는 소망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유한한 한계를 인정할 때 그 한계 너머에 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시몬 베드로와 그의 일행들은 모든 수고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었던 절망적인 상황에서 해방되어 소망의 빛을 보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명령은 절망에 처한 인생에게 큰 용기를 주신 것과 같습니다(4-7). 밤새도록 수고한 베드로에게 남은 것은 절망과 좌절뿐이었습니다. 인간만의 노력은 절망과 좌절을 가져올 뿐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절망의 인생에게 다가 오십니다. 그리고 그물이 찢어지도록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는 용기'를 주십니다. 전능하신 주님은 절망에 처한 자들을 도우심으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빈곤에서 풍요로움으로 역전시키십니다. 주님만이 인생의 빈곤함을 풍요로움으로 채워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시23:1-6). </strong>
<strong><span style="color:#ff0000;">3&gt; 인간은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미천한 죄인임을 깨닫고 겸손히 주님을 따르며 복음을 전하는 제자의 길을 가야 합니다(눅5:8-11).  </span>▪ 본문 8-11절을 보십시다. <span style="color:#ff0000;">▶</span>베드로는 예수님의 신적 권능을 체험함으로 그분의 전능하심을 깨닫고, 그분 앞에서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닌 미천한 존재임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는 극단적인 자존심과 자만심으로부터 비참한 겸손의 자리로 자신을 낮추었습니다(5).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우리)를 통해 놀라운 기적과 크신 능력을 나타내실 때 나(우리)는 교만해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깨달아 그분 앞에 더욱 겸손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겸손히 주님의 무릎 아래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그의 이런 충동적인 행동은 진실 되고 진지한 것이었습니다. 조금 전에 ‘선생님’이라고 부른 호칭이 이제 믿음의 대상인 ‘주님’으로 바뀌었습니다. 고기를 많이 잡게 된 이적적 사건이 예수님에 대한 관점을 사람에게서 하나님에게로 높여주었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베드로는 ‘이제 떠나지 마시고 계속 나와 함께 머물러 계시면서 고기를 많이 잡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하지 않고 ‘나를 떠나소서’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죄인이로소이다.’고 고백했습니다. </strong><strong>주님의 능력과 지혜와 지식, 무죄하심을 바라본 베드로는 예수관이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는 자아관도 달라졌습니다. 거룩하신 주님 앞에 섰을 때, 베드로는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8). 이제 베드로의 이름도 시몬에서 시몬 베드로로 달라졌습니다(마16:18). 하나님께로 가까이 갈수록 사람들은 두려움과 함께 자신의 죄성과 무가치함을 느끼게 됩니다(아브라함(창18:27), 모세, 욥, 이사야). 예수님은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려 오셨으며(32), 죄인임을 고백하는 자를 구원하시고 제자로 삼으십니다. </strong><strong>예수님은 이런 고백을 한 베드로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위로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앞으로 복음전파를 통해 사람을 잡되 죽이기 위해서 잡는 것이 아니라 살리기 위해 산채로 잡을 것임을 예언적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strong><strong>말씀에 의지하여 믿고 순종한 베드로에게 완전히 다른 새로운 삶이 주어진 것입니다.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는 주님의 말씀 속에는 인생관과 가치관을 변화시키는 강한 능력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로써 베드로의 생애는 극적인 전환점을 맞이하였고 새로운 역사를 향해 위대한 첫 걸음을 내딛게 되었던 것입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주님의 신적인 능력을 체험하게 되었을 때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주의 종들은 이들과 같이 세상에 속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부모와 전토와 자식을 미워해야 하며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해야 합니다(마19:29, 막10:29-30). 그렇지 않으면 결코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눅14:26-27). 눅14:26-27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인간의 능력만 믿고 바둥대면서 살다가 절망에 빠져버린 현대인에게 소망의 주님을 소리 높여 전파합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고 말씀하십니다. 또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4:2)고 하십니다. 복음 전파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그 자체가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span style="color:#ff0000;">♣말씀을 마칩니다.</span> 밤이 새도록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았으나 잡은 것이 없이 빈 그물을 씻고 있는 베드로를 향해 예수님은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십니다(4). 이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5)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내렸더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질 정도까지 된 것입니다. (6)’ 그리고 이 예수님의 신적 권능에 놀란 베드로는 예수님의 무릎 아래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고 고백합니다. 그가 갑자기 이런 고백을 한 것은 그냥 선생님 정도로 알고 있었던 예수님이 자기가 알고 있었던 게네사렛 호수의 어업에 대한지식과 경험과 상식을 초월한 신적 권능으로 밤새 한 마리도 잡지 못했던 고기를 배 두 척에 가득 채우는 만선의 기적을 베푸셨기 때문입니다(6-7). 그리고 이런 고백을 한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복음 전파의 사명을 부여하십니다(10). 이 사명을 받은 베드로와 일행들은 배를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르게 됩니다. 제자의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11).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 교훈은, <span style="color:#ff0000;">①</span>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span style="color:#ff0000;">②</span>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인간의 지식과 경험, 상식을 내려놓고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순종할 때 기적을 체험하고 만선의 축복을 받듯이 빈곤에서 풍요로움을 맛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span style="color:#ff0000;">③</span> 또한 인간은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미천한 죄인임을 깨닫고 겸손히 주님을 따르며 세상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제자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strong>.</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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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27 Sep 2026 22:33:16 +0000</pubDate>
			<category>주일예배설교</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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