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롬8:31-39)
◆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사랑과 최후 구원과 승리의 확신에 관한 말씀입니다. 성경 중에서도 다이아몬드로 불리우는 로마서 중에서도 보석반지 한 가운데 박힌 다이아몬드라고 할 수 있는 8장의 결론부분입니다. 8장을 성령장이라고도 합니다. 본문은 5장부터 8장 부분의 결론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 동시에 문맥에 따라서는 바울이 이전에 말한 26-30절에 대한 응답으로 주어진 것으로, 바울 신학의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26-30절의 말씀입니다(다같이).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소망의 성취를 인내와 확신을 가지고 기다릴 수 있는 세 가지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성령님은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26-27절). 둘째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28절). 셋째 성도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예정되고 선택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28 상). 이 예정 받은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며, 복음의 부르심에 믿음으로 응답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복음을 통해 ‘부르심 받고’,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으며’, 또한 ‘영화롭게 된 자들’입니다(29-30절). 하나님의 계획과 구원의 역사는 시간을 초월해서 수행될 것이며 우리는 본질적으로 이미 영광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렇게 성도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과 예정이 이들을 붙들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고난을 당한다 할지라도 이들은 확고한 소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자신이 하나님에 의해 선택받은 자라는 사실, 그리고 자신을 선택하신 하나님이 마지막까지 자신을 지키시며 보호하실 것이라는 확신, 이것을 분명히 깨달을 때 성도는 환난 중에서도 끊임없는 위로와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에 대한 응답으로서 31-39절 본문 말씀이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성도의 구원을 확실하게 약속하고 있으니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완전히 성취될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이에 대해 피조물인 우리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승리하는 삶이 주어졌다는 본문은 전반부(31-34절)와 후반부(35-39절)의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전반부인 31-34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어떤 일을 행하셨는가를 말합니다. 후반부인 35-39절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즉 어떤 삶의 과정에서 겪게 되는 여건이나 상황이나 악한 영적 세력들, 세상의 권세들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확신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고 사랑하시는 데 누가 어떤 것들이 그의 자녀 된 우리들을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단 말입니까? 본문에서는 그 어떤 것들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확실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확실성입니다. 최후 승리에 대한 찬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성도를 위한 구원의 확실성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어떻게 말씀하고 있을까요? 다섯 가지 질문에 대한 답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 처해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확신, 최종승리를 확신 할 수 있는 것은,
1>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행하신 일들 때문입니다(롬8:31-34).
▪ 본문 31-34절을 보십시다. ►31절에서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은 ‘하나님이 우리 편이라면’의 뜻입니다. 세상의 창조자시오 구원의 원천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도와주시니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사탄 마귀를 비롯한 온갖 악한 세력들(엡6:11-13, 벧전5:8)이 우리를 대적하려고 해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한 번 명하시면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가게 될 것입니다(신28:7).► 32절에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님을 희생제물로 내어주신 것은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려 했던 사건(창22:1-14)과 비슷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대신하여 수양을 예비해 주셨지만 하나님 자신은 아들을 희생 제물로 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심에 의한 구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현실적으로 나타났습니다(롬5:8, 요3:16).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아들도 주저함 없이 심판 아래 내어버려 두셨습니다. 하나님께 있어서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인간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게 하는 것은 실로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마27:46)라고 부르짖으셨을 때 하나님은 잠시 그에게서 얼굴을 돌리셨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우리를 사랑하신 절대적인 사랑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랑의 확증인 것입니다(롬5:8).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이 아들을 아낌없이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시기 때문에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혜로 주신 줄로 믿습니다. ►33절에서 ‘누가 고발하겠습니까?’는 법정 용어로 고발자인 마귀가 의의 재판장이신 하나님 앞에서 고발하는 하늘의 심판 법정을 생각나게 합니다. 때로는 양심이나 율법 또는 사탄(슥3:1, 계12:10)이 죄악이나 더러움에 대해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겠지만 그 고발 건들은 즉시 기각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의의 재판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보시고 고발당한 자를 의롭다고 선언하시기 때문입니다(롬3:24, 5:1, 요일2:1). ►34절에서 ‘누가 정죄하겠습니까?’ 아무도 우리에게 유죄판결을 내릴 수 없으며, 우리의 구원은 여전히 확실합니다(사50:9). ▶구원의 확실성은 세 번 보증되는데, ①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그 사랑의 선물에 대해서..(32절). ②하나님의 선택과 칭의에 대해서..(33절) ③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입니다(34절).▸이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는 4가지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①그는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②그는 우리의 의를 위해 다시 사셨습니다. ③그는 우주의 지배자가 되어 하나님의 우편에 계십니다. ④ 그는 우리를 위해 대언자로 간구해 주십니다(롬8:26-27, 요일2:1). ▲결과적으로 그는 믿는 자의 대속제물(롬5:8, 8:32), 믿는 자가 참여하게 되는 새 생명(롬6:4,8,11,엡2:5-6, 골2:13), 중보의 간구자(롬8:26-27), 아버지 앞의 대언자(요일2:1)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보장해 주기 위해 성삼위일체의 하나님이 협력하십니다(26절:성령, 성부:33절, 성자:34절). 소결>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행하신 일들은 이처럼 분명합니다. @ 하나님이 성도들 편이 되어서 악한 세력으로부터 지켜주시기 때문에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31). @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내어주신 희생적인 사랑이 있습니다.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은혜로 주신다는 것입니다(32, 엡2:5-9). @ 또 우리에게 의롭다하고 칭의해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을 그 누구도 고발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33). 이 말은 성도들은 이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았기에(엡2:8-9) 미래 세계에 가서도 그들을 향하여 고발하여 정죄의 심판을 받게 할 존재가 결코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 이유는 이들을 선택하시고 이미 의롭다 선언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며(33), 이들을 향해 퍼부어질 비난들을 대신 답변해 주실 분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 또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구속사역을 완성하시고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지금도 계속해서 간구하시기 때문에 현재나 미래에 있는 어떠한 정죄의 도전에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은 확실하다는 것입니다(34, 롬4:25, 히7:25).
2>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확신하며 그 구원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롬8:35-39).▪본문 35-39절을 보십시다. ▶성도들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있는 존재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온갖 세상의 고난과 재앙과 위험들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35절).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떼어놓을 수 없다.’는 것은 그 사랑을 보장된 미래의 영화에서 끊을 수 없다. 떼어놓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누구든지 믿는 자를 대적하거나 고발하거나 정죄하거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성도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바울은 자신이 당했던 갖가지 공격을 하나씩 열거하고 있으며(고후6:4-10, 11:23-27, 12:10), 이긴다는 확신을 가지고 맞서고 있습니다. 35절에서 바울은 일곱 가지의 고난, 즉 환난, 곤고, 박해, 기근, 적신, 위험, 칼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난은 예수님의 고난이었으며 동시에 바울의 고난이었고, 이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감내해야 할 고난인 것입니다. ▸여기서 칼은 상처를 입거나 최종적인 죽음의 위협을 뜻합니다. 즉 성도들에게는 피를 흘리며 죽기까지 고난을 각오하는 삶이 요청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36절에서 이러한 경험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시44:22) 하나님의 백성이나 복음전도자에게 있어서 고난이나 박해는 늘 겪는 일상적인 과정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온종일 제물로 바쳐지기 위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처럼 아무에게도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태에 놓여 져 있습니다. 이러한 죽음을 각오한 삶은 승리를 약속합니다. 십자가 없이는 부활이 없듯이, 고난 없는 승리의 삶이란 생각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고난이 십자가의 진정성을 더욱 더 확실히 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피할 이유가 없는 것이며, 오히려 우리 모두는 자원해서 이 고난에 동참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롬8:16-18, 빌3:10-11, 계21:7) ▶이렇게 할 때 이 모든 고난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37절) 이렇게 승리를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그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37). ▲38-39절에서 (다같이)바울은 이 사실을 ‘내가 확신하노니’라고 표현하면서 단호하게 구원의 확신을 방해하는 이 모든 방해요소들이 결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선언하며 구원의 확신과 더불어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성도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에 어떤 영적 세력들도, 그리고 피조세계의 어떤 요소들도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38-39). 외부의 어떤 힘이나 존재, 피조물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는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의도를 훼방할 수 없고 하나님과 그 자녀들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이 사랑의 끈을 끊을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만이 우리의 소망일뿐만 아니라 승리의 기초이며 불가항력적 은혜의 근원입니다(롬5:8, 요3:16). 주님을 위해 목숨까지 버릴 수 있는 것은 내 열심과 굳은 의지가 아니라 나를 붙잡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요일4:7-21, 7-11). 극한 상황에서 내가 이길 수 있도록 하나님이 나를 끝까지 붙들어 주시기 때문에 믿음의 선진들이 신앙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일예> 주기절 목사의 순교/ 성예> ① 12제자의 순교 :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모두가 순교하였습니다. ② 믿음의 선진들 : 히브리서 11장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 이삭, 야곱, 요셉, 모세, 기생라합,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 선지자들) ▶또 이들은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조롱과 채찍질 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며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습니다(히11:35-37). 이러한 모습이 맨 정신으로 가능할까요? 하나님이 붙드시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자녀는 그리스도 안에서 절대적으로 안전합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박해와 고난 중에서도 결코 좌절되지 않고 그리스도의 사랑에 힘입어 주어진 사명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확실성에 대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위대한 일들을 통해서 그 구원의 확실함을 재확인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의 영화가 확실하지 않다면 아무도 신앙생활을 잘하고 싶은 의욕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심한 자신을 부등켜 안고 갈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확실히 영화에 이를 것이기 때문입니다(30). (천국에 들어가는 구원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렇게 허락하셨기 때문에 넘어진 나를 일으키고 피곤한 다리를 일으켜 세워서 다시 뚜벅뚜벅 걸어 나가야 합니다. 저 영원한 천국을 향하여..../성경이 보증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끊어지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확실한 축복의 상속인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랑을 받은 자들인가요? 하나님은 만세 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예수님을 통해 모든 죄를 담당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투자하셨습니다(32절, 롬5:8). 우리는 천하에 둘도 없는 하나님의 유일한 사랑의 대상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과 배려와 앞날에 대한 확실한 보장 속에 사는 우리는 세상 사람들처럼 먹고사는 일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를 소망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적용> 한 가지 유념할 것은 이러한 구원의 확신과 보장이 있지만, 구원받은 이후 새사람이 되었다는 신분이 자동적으로 새로운 삶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옛 신분을 지배하던 육신을 따라 살아서는 안 되고, 끊임없이 자신의 정욕과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 살아가야 합니다(갈5:24). 보다 적극적으로 성도들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에 순종하면서 성령을 좇아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갈5:16, 롬8:6,13, 갈6:8, 엡4:22-24). 이처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몸의 죽은 행실들과 악한 생각들을 죽이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이 참된 성도요 하나님의 자녀의 정상적인 모습인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성령의 능력에 의지하여 살아갈 때, 위에서 말씀드렸던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모든 상황 모든 영적 세력들을 이기고 구원의 확신 속에서 승리의 찬가를 부르게 될 줄로 믿습니다.